前안보리 전문가 위원 조사 비록 한국일보 분석
일본 대북제재 위반 사례 추가 확인… 日 슈퍼컴퓨터로 북핵 시뮬레이션
‘韓 전략물자 관리 부실’ 이유로 “화이트 리스트 배제” 공언했지만 명분 없어져
일본 정부가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에 이용되는 전략물자 통제 의무를 방기해 온 사실이 또다시 드러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를 사실상 위반한 사례도 있다. 전략물자 관리체계를 허술하게 운영해 온 탓이다. 일본은 대(對) 한국 수출규제에 이어 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인 ‘화이트 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하겠다며 우리나라의 전략물자 관리체계 부실을 문제 삼았지만, 결국 명분 없는 꼬투리 잡기에 불과하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자신의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적반하장 격으로 한국을 모략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4일 후루카와 가츠히사(古川勝久) 전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위원의 ‘북조선 핵의 자금원-유엔조사 비록(秘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를 수 차례 위반했다. 일본 게이오대와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한 후루카와 전 위원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유엔 대북제재위에서 활동한 대북제재 전문가다.
후루카와 전 위원은 “국제적 제재망의 큰 구멍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을지 모른다”며 일본 정부의 전략물자 관리체계 부실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북한과 관련해 무기 및 관련 물자의 이전 방지를 의무화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2009년 채택)부터 어겼다. 2012년 8월 북한 남포항을 출발해 미얀마로 향하다 도쿄항에 정박한 대만 국적 화물선에서 알루미늄 봉과 판, 아연 잉곳, 니켈, 철 등 전략물자로 분류될 수 있는 100여종의 금속을 적발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알루미늄 합금 봉은 우라늄 농축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의 로터(회전자)를 구성하는 핵심부품으로 반드시 통제해야 하는 품목이다.
일본 정부의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단속에 나섰다. 하지만 이후 6개월간 시간만 끌다 알루미늄 합금 봉 5개만 압수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재래식 무기 제조에 전용될 수 있는 다른 전략물자는 화물선사에 그대로 돌려줬다. ‘재래식 무기 이중용도 품목 규제’와 관련한 일본 국내법 규정이 미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후루카와 전 위원은 “경제산업성 소관의 법을 적용할 경우 제재가 가능했음에도 화물검사법을 적용해 화물을 반환했다”며 “미국 정부가 이 같은 조치에 강력 항의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3형’ 개발에도 일본 장비가 사용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7년 8월 23일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 방문 당시 화성-13형 도면을 앞에 두고 찍은 사진에서 일본제 ‘소재 환경 시험기’가 확인된 것이다. 해당 시험기는 다양한 환경 변화가 특정 소재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정밀계측 장비다. 북한이 실물을 공개하지 않고 숨겨둔 화성-13형은 북한이 거듭 발사 실험을 해온 다른 화성형 미사일과 달리 고체연료를 사용한다. 불시에 미상의 장소에서 기습 타격이 가능하다. 북한이 대미 협상에서 최후의 카드로 숨겨둔 전략무기를 만드는 데 일본 기술이 쓰인 셈이다.
후루카와 전 위원은 아울러 정보기관 관계자의 첩보를 바탕으로 “일본 발전기 제조회사의 물품이 북한 영변 원자력 시설에 도입됐다”고 지적했다. 또 일본 내 연구기관에서 북한 관계자가 슈퍼컴퓨터를 사용해 핵 관련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특히 북한 핵ㆍ미사일 기술자가 일본을 오가며 활동한다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이는 핵ㆍ미사일 기술자의 출국 자체를 금지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18호 등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후루카와 전 위원의 지적이다. 일본 정부는 2016년 대북 독자제재 조치를 통해 ‘재일 외국인인 핵ㆍ미사일 기술자가 북한을 도항(渡航) 지역으로 할 경우 재입국을 금지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 규정은 북한에 도항하지 않고 제3국을 경유해 활동하는 기술자들은 적발하기 어렵다는 허점이 있다.
일본 정부는 대북제재 대상기업인 북한 원양해운관리회사(OMM) 소속 선박에 대한 자산동결 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 일례로 OMM 소속 희천호가 2015년 3월 10일 동해 연안의 일본 돗토리현 사카이항(境港) 5㎞ 인근 영해에 정박했을 때 화물검사를 실시했지만 “염려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풀어줬다. 유엔 대북제재위가 다음날 유엔 일본 대표부에 공식 서한을 보내 “희천호를 절대 풀어주지 말라”고 압류를 거듭 요구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한달 뒤 유엔에 “희천호에 대해 인도적 입장에서 일본 영해 정박을 허가했고, 국제적 관행에 따라 무해통항권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후루카와 전 위원은 “일본 정부가 국제법상 의무를 저버리고 무해통항권을 적극 인정한 것”이라며 “일본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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