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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러시아 무관 발언을 정부 입장으로 확대 해석해 덜컥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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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러시아 무관 발언을 정부 입장으로 확대 해석해 덜컥 공개

입력
2019.07.25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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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유감 표명” 무관 말 공개한 靑, 미숙한 대응에 비난 

 국방부는 “영공 침범 안 했다”는 러 정부 입장문 이미 받아놔 

[저작권 한국일보] 4월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하는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류효진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4월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하는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류효진 기자

청와대가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 도발과 관련해 성급한 대응으로 스스로 신뢰도에 물음표를 남겼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4일 오전 11시쯤 언론 브리핑에서 전날 오후 3시 국방부에 초치된 러시아 차석무관이 우리 국방부 정책기획관에게 한 미공개 발언을 소개했다. 윤 수석은 ‘러시아 정부가 유감을 표명했으며, 기기 오작동이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무관 발언을 소개했다. 국방부가 아닌 청와대 고위 참모가 상대국 무관 발언을 공개한 것도, 대사관에 파견된 무관의 발언을 ‘해당국 정부 입장’으로 확대 해석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청와대는 ‘러시아와 확전하는 분위기가 아니며, 안보외교에도 허점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다소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 발표는 5시간 만에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러시아 정부가 주러시아 한국 대사관을 통해 보낸 공식 문서(무첩)를 우리 국방부가 오후 4시쯤 공개하면서다. 러시아는 문서에서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3일과 24일 러시아가 언론 등을 통해 발표한 입장과 동일했다. 러시아 정부 입장을 놓고 청와대만 엉뚱한 해석을 한 셈이다.

청와대의 대응 논란은 국제 무대로까지 옮겨갔다. 러시아 정부는 이날 오후 6시쯤 인테르팍스 통신 등 언론을 통해 “한국 정부에 사과한 적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청와대의 섣부른 발표가 빚은 대형 사고였다. 청와대는 국방부ㆍ외교부 등 주무 부처를 통해 러시아의 정확한 입장을 신중하게 파악하지 않았다. 외교안보 이슈 대응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청와대가 러시아 무관의 말을 사실로 믿고 싶은 나머지 ‘확증편향 오류’에 빠졌던 게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저작권 한국일보] 러시아 군용기, 독도 영공침범 재구성. 그래픽=강준구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러시아 군용기, 독도 영공침범 재구성. 그래픽=강준구 기자

실제 청와대는 국방부와 제대로 소통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정경두 장관 명의로 러시아의 영공 침범 사실을 확인하고 러시아에 항의하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입장문에 러시아 정부의 무첩 내용도 반영하기로 하고 국방부가 문구를 다듬는 중에 윤 수석이 청와대에서 무첩 내용과 배치되는 러시아 무관 발언을 덜컥 공개했다. 국방부에서 무첩 내용을 뒤늦게 보고 받은 청와대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국방부를 통해 무첩 내용을 공개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외교안보 콘트롤타워의 위신이 이미 떨어진 뒤였다.

청와대의 대응 실수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윤도한 수석은 해명에 나섰다. 윤 수석은 ‘러시아 정부의 입장이 달라진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지만, 러시아는 23일 이후 ‘영공 침범 사실 없음’에서 꿈적도 한 적 없다. 윤 수석은 “러시아 무관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전달한 것으로, 그 발언의 사실 여부는 판단할 수 없다”고도 했다. 청와대가 타국 외교관의 말을 검증 없이 전달했다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

청와대로 인해 사건 자체에 대한 스텝이 꼬인 측면도 있다. ‘사과 여부’를 둘러싼 청와대와 러시아 정부의 진실 공방이 부각된 탓에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두 번이나 침범했다는 ‘핵심’이 가려진 것이다. 영공 침범을 부인하는 러시아의 태도를 조기에 바로잡지 못할 경우 지난해 발생한 한일 간 초계기 레이더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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