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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반 년 만에 발레 무대에… 김리회 “절박함이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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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반 년 만에 발레 무대에… 김리회 “절박함이 힘”

입력
2019.07.24 16:17
수정
2019.07.24 18:4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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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는 이례적… “출산이 은퇴 동의어 이제 아니죠”

출산 2주 전까지 토슈즈 위에 올랐을 정도로, 발레는 삶이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리회는 다시 백조로 무대 위에 서기 위해 물 아래에서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는 중이다. 서재훈 기자
출산 2주 전까지 토슈즈 위에 올랐을 정도로, 발레는 삶이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리회는 다시 백조로 무대 위에 서기 위해 물 아래에서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는 중이다. 서재훈 기자

“딱 100일 되는 날 출근을 했어요. 100일 만에 토슈즈에 발을 넣은 그 순간을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굳은 살이 사라져서 너무 아팠지만, 동시에 정말 행복했거든요.”

2006년에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첫해 발 부상으로 3개월 쉰 걸 제외하고는 일주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었다. 수석무용수 김리회(32)는 입단 직후부터 군무와 주역을 동시에 맡으며 바쁘게 무대에 서 왔다. 그런 그가 100일이나 쉬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출산. 올해 1월 딸을 낳은 그는 다음달 28일부터 9월 1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오딜로 관객을 만난다.

온 근육을 사용하는 데다 체형 변화가 금기시 되는 발레리나에게 출산은 지금까지 발레 은퇴와도 같은 말이었다. 더욱이 주역으로 바로 복귀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마주한 김리회가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해 흘리는 땀방울의 무게는 이전보다 더 무거워졌다.

김리회는 지난해 5월까지 갈라 무대에서 ‘돈키호테’를 선보였고, 출산 2주 전까지도 발레단에 출근해 토슈즈를 신고 연습했다. 공연을 하지 않았을 뿐 발레와 거리를 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출산 후에도 금방 복귀가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런데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윗몸 일으키기를 하나도 못할 정도로 근육이 사라졌고 물건을 손으로 집어 올리지 못할 정도로 관절에 힘이 없었어요. 일상생활조차 안될 정도로 힘이 없으니 발레를 다시 못하는 건 아닐까 눈물이 줄줄 나더라고요.”

어린 시절 처음 봤던 발레 작품도 '백조의 호수', 국립발레단 입단 후 부상을 입었던 공연도 '백조의 호수'였다. 김리회가 '백조의 호수'로 복귀하는 소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서재훈 기자
어린 시절 처음 봤던 발레 작품도 '백조의 호수', 국립발레단 입단 후 부상을 입었던 공연도 '백조의 호수'였다. 김리회가 '백조의 호수'로 복귀하는 소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서재훈 기자

우리나라 1세대 발레리나 가운데 최태지, 허용순 등이 출산 후 무대에 오른 적이 있긴 하지만 드문 사례다. 국립발레단에서 최근 5년간 출산휴가를 사용한 무용수 7명 중 수석은 김리회가 유일하다. 현역 무용수로서 활동할 날이 길지 않은 만큼 대부분 발레리나들은 임신과 출산을 뒤로 미룬다. 김리회 역시 ‘은퇴할 때쯤 아이를 갖자’는 게 원래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는 “아이를 낳는 건 발레를 그만두는 것과 동의어였다”며 “무용이 보여지는 예술이다 보니 그냥 해도 힘든 임신과 출산이 무용수와는 전혀 다른 세계 얘기인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임신 중 복귀를 결심한 게 아니라, 지금 발레를 그만 둘 수 없다는 절박함이 컸다.

출산 한 달 후부터 그는 ‘하루에 하나씩’을 마음으로 삼켰다. 오늘 하나를 성공하면 내일은 두 개를, 모레는 세개를 하자는 마음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을 돌보는 데도 시간이 들기 때문에 엄마 발레리나의 연습 시간은 ‘짬날 때 언제나’로 재설정됐다. “아이를 안고 재우면서도 발 포인트를 해보고, 스쿼트를 하고 바트망(발을 힘차게 뻗었다가 돌아오는 동작)을 하는 거죠. 저한테 제일 중요한 건 발레 동작이나 운동을 한 번이라도 더 하는 거거든요. 지금은 출산 전보다 2배로 운동하는 것 같아요.” 출산 전 여러 번 무대에 섰던 ‘백조의 호수’에서 오딜이 왕자 지그프리트를 유혹하는 32회 푸에테를 다시 성공하기 위해, 그는 요즘 매일 이 장면을 2번씩 연습한다.

김리회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서재훈 기자
김리회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서재훈 기자

발레 강국 러시아에서는 발레리나들의 출산 후 복귀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동양인보다 신체 회복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출산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와 같은 날 공연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발레시어터의 ‘백조의 호수’에 오데트-오딜로 무대에 서는 이리나 코레스니코바(39), 자타공인 최고의 줄리엣으로 불리는 볼쇼이 발레단 수석무용수 예브게니아 오브라초바(35), 지난해 김기민과 함께 ‘돈 키호테’로 내한했던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빅토리아 테레시키나(36) 등은 출산 후에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도 “김리회 무용수처럼 훌륭한 발레리나가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이 국내에도 잘 마련되길 바란다”며 무용수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리회는 출산 후 더 오랫동안 현역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고 했다. “지금은 아이가 커서 제 공연을 보러 올 때까지 무대에 서고 싶어요. 7,8년은 걸릴 텐데 그 때까지 발레 작품을 더 오래 하고 싶어요.”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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