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한일 비상구는 없나] <중> 화해, 불가능하지 않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5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을 공식화하는 기자회견 도중 주먹을 불끈 쥔 채 비장한 표정으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ㆍ일 경제전쟁의 진앙지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 문제다. 일본은 없다고 보지만, 한국은 있다고 맞서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기업은 이제껏 징용 피해자에게 단 한 번도 배상해 준 적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일본 기업이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한 사례로는 △1997년 징용공 출신 김경석(당시 64세)씨가 제기한 일본강관 상대 손해배상소송 △2000년 한국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제기한 후지코시 상대 손해배상소송 △1997년 징용 피해자 유족들이 제기한 일본제철 상대 손해배상소송 등 3가지가 꼽힌다.

이 사례들만 자세히 들여다 봐도 현재 일본 측이 내세우는 논리가 억지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사건들은 ‘일본 법원에다 소송을 낸다→법적으론 패소 판결을 받는다→일본 기업이 배상에 합의하고 화해한다’는 패턴을 밟는다. 주의해볼 부분은 일본 법원이 징용 피해자들에게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주로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1965년 한ㆍ일 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 청구권은 소멸시킬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일본 법원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종 판결 뒤 일본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배상에 나선 것도 차이점이다. 회사의 대외적 이미지 실추를 걱정할 수 밖에 없는 기업들은 재판에서 이겨놓고도 따로 배상했다. 가령 1997년 일본강관은 피해자에게 410만엔을 지급했다. 2000년 후지코시는 여자 근로정신대원 여덟 명에게 약 4,000만엔을, 1997년 일본제철도 징용 피해자 유족들에게 각 200만엔과 위령비용을 지급했다.

일본 법원이 시효 문제를 걸고 넘어지자, 징용 피해자들은 한국 법원에 호소했다. 그 결과물이 지난 2012년 5월 징용 피해자 1인당 1억원씩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예전 일본기업들처럼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역시 화해와 보상의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가로막은 이가 바로 현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다. 이 때문에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센터장은 문제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로 아베 정권 그 자체를 꼽았다. 도 센터장은 “1990년대만 해도 냉전이 끝난 뒤 전세계적으로 민주화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 역시 국제 여론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아베 정권의 ‘한ㆍ일협정 완결론’ 프레임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로선 설령 화해하고 싶다 해도 먼저 나설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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