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민박을 한지 열흘째 되던 날이다.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데 이름을 알 수 없는 벌레가 기어갔다. 젊었을 때는 보이는 벌레마다 족족 때려잡아야만 속이 후련했으나, 오십 줄에 접어들면서 모기ㆍ파리ㆍ바퀴벌레를 제외한 어떤 벌레도 죽이지 않게 되었다. 그 날도 이불 사이를 기어가는 벌레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뱀 생각이 났다. 만약 내 앞에 뱀이 나타난다면? “뭐, 이제는 뱀도 귀엽게 봐주자.” 결심을 하거나 공언을 하고 나면, 곧바로 시험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튿날 정오,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위해 도시락을 사서 민박집을 나섰다. 그런데 민박집과 가까운 골목에서 길이 1미터나 되는 흑갈색 뱀을 만났다. 그 놈은 내 발 앞을 느릿느릿 가로질러 민가의 돌담 속으로 구불거리며 스며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발작적으로 길바닥에 떨어진 돌부터 주워들었을 텐데, 다행히도 어젯밤의 결심이 떠올랐다. 그래서 진짜 귀엽게 봐주려고, 구불거리는 뱀을 난생 처음으로 자세히 감상했다. 귀엽다고 느끼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지만, 흉측한 지식인 무리들보다는 확실히 덜 흉측스럽다. 여기서 나는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련다.
실명(實名) 비판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르며,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이루어지는 실명 비판을 용기의 발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실명 비판의 진상은 그것과 아주 다르다. 프랑스 대혁명의 심장이었던 로베스피에르는 1794년 7월, 국민공회에서 “지금 이곳에도 반혁명 분자가 있다”는 연설을 하면서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반혁명 분자로 몰리면 죽음을 면치 못하던 시절, 실명을 밝히지 않은 로베스피에르의 처신은 국민공회 의원들 전체를 그의 적으로 만들었다. 로베스피에르를 단두대로 보낸 이 사례는, 실명 비판을 회피한 사람이 맞게 될 횡액을 보여준다. 오해와 달리 실명 비판은 실명 비판을 행한 사람을 보호해준다. 한국에 실명 비판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언론학자 강준만은 무수한 실명 비판을 했지만, 그가 밉상으로 여겨지지 않고 지식인 일반의 사랑을 받게 된 비결도 이 때문이다. “지식인 무리들”이라고 두리뭉실하게 말하는 것으로 지식인 전체의 반감을 사느니,‘누구 누구’라고 콕 찍어 이름을 밝히는 게 훨씬 지혜롭다. 하지만 이런 화제는 이번 칼럼의 주제가 아니다.
나는 청소년 시절부터, 뱀을 죽여야만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기이한 강박에 시달렸다. 일본의 사회학자 강상중이 쓴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사계절, 2017)의 한 대목을 보면, 세계의 모든 소년들이 이런 강박을 공유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십대 소년들이 서로 살육전을 벌이는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거론한 뒤에 이렇게 고백한다. “제 기억 속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정원 구석 풀밭에 숨어 있던 구렁이를 찾아내 갈가리 찢고 흥분해서 드높이 소리 지르던 일이요. 구렁이는 아무런 죄도 없었는데 그저 생김새가 그로테스크하다는 이유만으로 죽을 때까지 괴롭히고, 또 피가 튀는 모습에 모두 가슴 두근두근해서 흥분하다니…….”
산 속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던 스무 서너 살 때의 어느 날 아침, 저수지를 산책하다가 물을 마시러 온 뱀 한 마리를 발견하고 미친 듯이 그 뱀을 돌로 찍어 죽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뱀을 죽인 것이다. 원시 사회의 소년들은 사자나 곰 같은 맹수를 죽이는 통과의례를 통해 성인이 된다지만, 나는 원시 사회의 일원이 아니었다. 뱀을 죽여야만 어른이 될 것 같다는 강박은 십대 시절에 경험했던 강렬한 기독교 신앙(문명)의 잔재였다. 그 일이 있고서 나는 ‘처음 뱀을 죽이다’라는 제법 긴 시를 썼다. 그 시의 마지막 행은 이렇다. “분명 구세주는 흰 뱀이 되어 다시 오실 것입니다.”
나는 애꿎게 죽임을 당한 뱀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고(‘애꿎다’에 상응하는 영어 단어는 ‘죄 없는’ ‘순수한’ ‘선량한’이라는 뜻의 innocent다), 더 간교하게는 뱀의 복수를 피하고 싶었다. 이것이 문명의 참다운 핵심이다.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이순신도, 전태일도, 노무현도, 내가 죽이고 내가 추존한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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