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밸리, 혁신의 심장을 가다] <7> 긱 경제는 요즘 
 온라인 중개 플랫폼 이용해 노동 수요ㆍ공급자 연결 최적화 
 작년 美 노동인구의 36% 차지… 2027년 노동자 절반 종사 전망 
지난 5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우버 본사 앞에서 열린 시위에서 만난 무스타파는 회계사가 본업이지만 남는 시간에 우버를 운전한다. 우버 본사가 과다한 수수료를 가지고 간다는 게 무스타파의 생각이다. 샌프란시스코=신혜정 기자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는 건 좋죠. 하지만 날이 갈수록 수수료가 높아지는 건 문제예요.”

지난 5월 8일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마켓스트리트 1455번지 앞. 실리콘밸리의 대표 기업인 우버 본사 앞에 모인 수십 명의 시위대 속에서 무스타파(32)를 만났다. 자신의 직업이 회계사라고 소개한 그가 우버ㆍ리프트 등 공유경제 플랫폼을 이용해 운전을 한 지도 3년째다. 이직 과정에서 잠시 남는 시간을 활용해 우버를 운전하며 버는 수입이 처음엔 꽤 쏠쏠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루 10시간 일하나 4시간 일하나 수입에 큰 차이가 없어졌다고 한다. 우버가 밝히는 수수료는 25%이지만 페널티 부과 등의 방식으로 최대 80%까지 떼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우버는 수수료를 매기는 방식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무스타파는 “우버는 수수료 책정기준을 공개하고 기사들에게 수익을 공정하게 배당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은 샌프란시스코는 물론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내 주요 도시에서 우버 기사들이 동시에 모여 벌인 첫 시위였다. 우버의 주식시장 상장을 앞두고 기사들이 공정한 이윤 분배를 요구하며 나선 것이다. 시위를 조직한 노동단체인 워킹파트너십스유에스에이(WPUSA)의 마리아 페르난데스(36) 디렉터는 “우버는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그럴수록 긱(Gig) 노동자들이 뭉쳐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기업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약한 미국에서 ‘개인사업자’나 마찬가지인 우버 기사들이 한데 모인 것도 “사태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우버 본사 앞 시위 열기를 도시의 다른 지역에선 실감하긴 어려웠다. 우버가 노동자들의 몫을 과도하게 빼앗아 간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기사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WPUSA 측은 우버 기사들이 이날 출근시간에 애플리케이션(앱)을 끄고 동맹 파업을 하도록 독려했지만, 실제 참가율은 높지 않았다. 파업이 예고됐던 오전 7~9시에 우버를 호출했는데, 평소와 비슷해 큰 어려움이 없었다. 오전 8시에 만난 우버 기사 제이슨(30)에게 시위에 참가할지에 대해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유연성을 생각하면 이만한 일이 없어요. 남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고 자기 계발도 가능한데 장점만큼 단점도 감수해야죠.”

지난 5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우버 본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우버 기사들. 노동계급의 연대를 촉구하고 있다. 신혜정 기자

◇ ‘최적화’ 알고리즘과 ‘사이드허슬’ 문화가 만든 긱경제

5,700만명. 지난해 8월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추정한 미국 긱 노동자는 노동 인구의 약 36%였다. ‘긱’이란 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에서 임시로 섭외돼 일하던 연주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온라인 중개 플랫폼을 통해 단기로 서비스를 중개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독립적 일자리를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확장됐다. 긱 경제의 부상은 약 10년 전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공유경제’가 촉발했다. 소유물과 노동력을 공유한다는, 우버ㆍ에어비앤비 등의 생소했던 비즈니스 모델은 어느새 21세기 창업 성공의 보증수표로 여겨지고 있다. 배달 플랫폼 포스트메이트, 심부름앱 태스크래빗은 물론 고학력 엔지니어들을 위한 긱 경제 플랫폼 업워크까지,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주목받는 스타트업들 상당수가 긱 경제에 의존한다.

긱 노동의 확산 이유를 단순히 플랫폼의 양적 확대에서만 찾을 순 없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내세우는 긱 경제의 핵심은 보다 빠르고 적절하게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최적화’ 알고리즘이다. 리프트의 머신러닝 엔지니어였던 마히르 간디 에잇폴드에이아이 부사장은 “기존에 택시기사들은 ‘늦은 밤 번화가에 승객이 많을 것’이라는 경험적 지식에 의존해 운전을 했지만, 리프트는 승객과 기사의 실제 위치를 파악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적의 이동 경로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을 사용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운행을 하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이 꼽는 또 다른 이유는 밀레니얼세대(1981년~1996년 출생) 사이 유행하는 ‘허슬(hustle) 문화’다.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허슬’ 문화의 영향을 받은 청년세대는 자신의 긱 노동을 본업 외 프로젝트를 뜻하는 ‘사이드허슬’이라는 유행어로 부르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화장품 스타트업 창업을 준비하는 신디(28) 역시 프리랜서 구인 구직 플랫폼에서 웹디자인 일을 하며 부수입을 챙기는 ‘사이드허슬러’다. “나뿐만 아니라 빨리 성공하길 원하는 친구들은 다들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게 신디의 설명이다.

그러나 긱 노동을 무한 긍정하는듯한 청년세대의 문화는 결국 긱 경제 스타트업들이 만들어낸 과장된 이미지에 근거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슬앤긱’의 저자 알렉스 라브넬은 “광고에서는 멀끔한 직장인이 퇴근 후 커피를 마시며 프리랜서 일을 하는 것을 주체적 삶처럼 그릴 뿐 가족ㆍ친구와의 시간을 희생해 일해야 한다는 현실은 알려주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곳곳에서 사이드허슬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나오고 있지만, 긱 노동이 미국 젊은 세대에 중요한 선택지가 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시장조사기관 뱅크레이트의 지난 5월 조사에서는 사이드허슬로서 ‘긱’직업을 가진 밀레니얼세대가 약 48%로 X세대(39%)나 베이비부머(28%)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긱경제는 기회’ 진화하는 스타트업들

공유스쿠터 서비스 스타트업 라임은 스쿠터를 충전하는 단기 인력인 ‘라임 주서(Juicer)’를 고용한다. 채용과정은 인터넷 사이트의 간단한 설문을 통해 10분만에 끝난다. 라임주서 채용 홈페이지 캡쳐.

긱 경제에 기반한 스타트업들의 규모가 커지면서 보통의 초기 기업이 채용 절차를 진행하기에 어려울 정도로 구직자가 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제 이런 틈새를 노린 ‘긱경제 2.0’ 스타트업까지 등장하고 있다. 채용 과정에 필요한 범죄기록ㆍ신원조회를 자동화 방식으로 대행해주는 체커(Checkr)나 서류 접수부터 면접 스케줄 정리까지 사람이 손수 하던 모든 과정을 자동화한 채용관리 솔루션 파운틴 등이 그 사례다.

파운틴의 류기백(28) 대표는 창업 초기인 2014년부터 긱 경제에서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사업 모델을 전환했다고 한다. 류 대표는 “긱 경제 회사들은 그때그때 필요한 인력을 적절한 시간에 채용해야 하는데 정작 채용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여러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며 “우리의 솔루션은 이 모든 과정을 체계적으로 자동화해 빠른 채용을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운틴이 현재 채용 관리를 하는 인력은 한 달에 100만명에 달한다.

긱 경제가 기회냐 위기냐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최근 10년간 노동의 구조가 빠르게 바뀐 만큼 10년 후 노동의 모습도 지금과는 전혀 달라질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는 일은 중요하다. 류 대표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만큼 우버 기사 등 현재 볼 수 있는 직업은 다른 방향으로 전환될 것”이라며 “이런 변화를 고민하고 대비하는 게 (파운틴의)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2027년 미국 노동 인구의 절반이 긱 노동자일 것으로 예측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수정 미국 내 긱 노동자 수. 그래픽=김경진기자

샌프란시스코=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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