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한동안 잠잠했던 서울 지역의 아파트 전세난을 다시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시중금리가 낮아지면 전세자금 대출금리도 낮아져 전세 수요는 늘어나는데 반해, 전세금을 굴려 얻는 이자수익이 낮아지는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서 되레 공급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 상승이 소비 여력까지 위축시킬 거란 우려도 나온다.
◇전세 수요-공급 역주행 우려
2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18일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주택 매매가격에 끼칠 영향은 제한적일 거란 전망이 많다. 저금리로 부동산에 유동자금이 흘러들 수는 있지만, 여전히 정부 규제와 불경기 요인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세 시장에는 파장이 적지 않을 거란 관측이 높다. 통상 시중금리가 올라가면 전셋값이 안정되고, 반대로 내려가면 전셋값이 오른다. 우선 세입자 입장에서는 보다 낮은 금리로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어 월세보다 전세를 선호하는 가구가 늘게 된다.
반대로 집주인에겐 수억원의 보증금을 받아도 예금 이자소득이 낮아져 전세금을 올리거나 전세를 월세로 돌리려는 유인이 생긴다. 전세 수요와 공급의 ‘역주행’ 현상이 발생하는 셈이다. 실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기준금리 인하 이후 지난 주말 동안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려는 집주인들의 문의가 하루에도 열 건 넘게 왔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도 강남권 중소형 전세 매물은 귀한 편인데, 앞으로 전세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세난 다시 오나
최근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는 전셋값도 이런 전망에 힘을 더한다. 작년 9ㆍ13 대책 영향으로 매매시장이 가라앉으면서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은 10월 이후 33주 연속 하락세를 보여왔다. 올해 초 9,510가구에 달하는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등 대규모 물량 공급도 이어지면서 상반기에도 전세값은 꾸준히 안정세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한국감정원 집계 결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달 셋째 주 보합으로 돌아선 데 이어, 이달 들어서는 3주 연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특히 이달 1주차와 2주차 0.01%였던 전세가격 변동률은 3주차에는 0.02%로 확대되면서 상승폭이 커지고 있다.
특히 서울 서초구의 아파트 전세가격은 전주대비 0.12% 오르며 서울 자치구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박세라 신영증권 연구원은 “금리인하가 지속될 것이란 기대감은 자본이익률에 영향을 주게 된다”며 “공급자 관점에선 전세 공급을 꺼리며 월세로의 전환이 늘어날 수 있고, 반대로 수요는 늘어나면서 전셋값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럴 경우 한동안 잠잠했던 서울의 전세난이 재연될 수도 있다. 앞서 한은이 2017년 11월 기준금리를 인상 기조로 돌리면서 이전까지 공급 부족을 겪던 전세 물량은 꾸준히 늘고, 대신 월세 물량은 줄었다. 올해 상반기 전체 전ㆍ월세 주택 거래량 가운데 월세 비중(40.4%)은 1년 전보다 0.2%포인트 감소했다. 2015~2016년 월세 가구 비중이 50%를 오가던 것과 대조된다.
하지만 앞으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진다면 월세 비중이 다시 2015~2016년 수준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전망이다.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올리거나 월세를 선호하면서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이 높아진다면 안 그래도 어려운 국내 경기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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