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ㆍ러 군용기 동해 동시 도발]
러 “아태해역서 첫 연합 초계비행” 한미일 공조 느슨해지자 美 압박
美 인도ㆍ태평양 영향력 확대에 반발, 중ㆍ러 연합전선 동해로 넓혀
지난해 5월 러시아 승전기념일 군사퍼레이드에서 러모스크바 상공을 날고 있는 TU-95 폭격기. 연합뉴스

중국ㆍ러시아 군용기가 23일 한국 영공과 방공식별구역(KADIZㆍ카디즈)을 농락하며 전례 없는 도발을 자행한 것은 ‘공동의 적’ 미국을 겨냥해 약한 고리인 한국을 상대로 군사적 밀착관계를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특히 지난달 중국과 러시아는 양국 관계를 ‘신시대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로 격상한 이후 무력충돌 위험도 불사하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어 중간에 끼인 한국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질 우려가 크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공보실 명의의 언론 보도문을 통해 “23일 러시아 공군과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이 장거리 군용기를 이용해 아시아태평양 해역에서 첫 번째 연합 공중 초계비행을 수행했다”고 발표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해부터 미국에 맞서는 공조카드로 군사력을 부쩍 활용해왔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달아오르던 지난해 9월에도 중국은 ‘동방-2018’ 훈련에 3,200명의 병력과 장비를 보냈다. 30만명의 러시아군이 투입된 탈냉전 이후 양국 간 최대 규모 훈련이었다. 지난달 7일에는 러시아 구축함이 동중국해에서 미국 순양함에 15m거리까지 접근해 충돌할 뻔한 상황을 연출했다. 당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러시아를 찾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사상 최고 수준으로 양국 관계를 격상한 이후 귀국을 앞둔 시점이었다. 이외에도 지중해, 발트해, 흑해 등지에서 러시아 군용기가 의도적인 근접비행으로 미군과 아찔한 상황을 유도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미국과 중러가 맞붙을 뇌관은 사방에 널려있다.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 이란 핵 합의 파기, 호르무즈 해협 파병 등 곳곳이 잡음투성이다. 비핵화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려는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옭아매는 미국의 공세가 못마땅하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중 갈등은 물론이고 러시아도 미국과의 관계를 좀처럼 개선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러는 이번 영공 침범을 통해 기존 대미 연합전선을 동해로 넓혔다. 동해는 한국과 일본을 견제하기에 적절한 장소이며, 하와이에 있는 미국의 인도ㆍ태평양사령부로 향하는 진입로나 마찬가지다. 일본 통합막료감부(우리의 합참)에 따르면 중러는 매년 동해에서 3, 4차례 공개 훈련을 해왔다. 하지만 갈수록 하늘과 바다를 넘나들며 비공개 훈련을 강화하는 추세다. 이달 초 중국 구축함 2척이 대한해협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했고, 지난 2월에는 중국 이지스함이 동해에서 러시아 전투기 SU-35, 폭격기 TU-95와 훈련에 나섰다. 군 관계자는 “이번 상황도 예정되거나 정례적 훈련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도발 양상도 달라졌다. 중국은 2013년 11월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한 이후 매달 23~27일경 이어도 상공을 침범해왔다. 대한해협을 거쳐 동해까지 한반도를 ‘U’자로 넘나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반대로 러시아는 북쪽에서 동해로 내려와 2, 3개월에 한번 꼴로 카디즈에 진입했다. 반면 이번에는 양국이 동시 도발에 나서는 양동작전으로 수위를 높였다. 김대영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동해는 중국과 러시아가 군사력을 통해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에 좋은 곳”이라고 평가했다.

도발 시점에도 치밀한 계산이 깔렸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일본을 들러 23일 한국에 날아오는 타이밍에 맞춰 미국이 보란 듯 동해로 양국이 동시에 군용기를 띄웠다. 특히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한미일 3각 협력의 효용성과 미국의 중재역량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던 참이다. 중러 관계가 얼마나 공고한지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한국이라는 적당한 덩치의 만만한 상대를 타깃으로 고른 셈이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한미 동맹이 느슨해져 미국이 즉각 보복에 나서기 어렵고 한국도 군사적으로 적극 대응할 수 없다는 확신에 따른 도발”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신은별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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