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의사 밝힌 피해자 중 79%는
“가해자 처벌 땐 계속 근무 원해”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같은 부서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한 30대 직장여성 A씨는 요즘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 용기를 내 사내 고충처리 담당자에게 신고했지만 돌아온 것은 A씨 자신에 대한 전보 인사였다. 자신이 아닌 가해자를 다른 부서로 이동시켜달라고 요구했지만 담당자는 가해자가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어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게다가 “자꾸 이의 제기를 하면 둘 다 자르는 수밖에 없다”는 회사 측의 반 협박까지 듣고 나니 A씨는 회사를 계속 다닐 자신이 없어졌다. 직장 내 성희롱ㆍ성폭력으로 피해자가 퇴사를 고민하는 일은 A씨만의 사례가 아니다. 최근 한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성추행 피해를 입은 스태프가 제작사의 2차 가해로 일을 그만뒀다고 밝히면서 방송 제작 현장에서 얼마나 성희롱ㆍ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무신경하게 이뤄지는지가 드러났다.

직장 내 성희롱ㆍ성폭력 피해자 중 절반은 퇴사 의사가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특히 이들 10명 중 7명은 가해자 엄중처벌 등 관련 대책만 잘 세워진다면 회사를 계속 다니겠다고 응답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떠밀리듯 퇴사를 고민하는 피해자가 다수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3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직장 내 성희롱ㆍ성폭력 방지를 통한 노동시장 이탈방지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재직 중인 직장에서 성희롱ㆍ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근로자는 전체의 42.5%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8~9월 근로자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다. 응답자 중 여성비율이 85%, 남성이 15%다.

[저작권 한국일보]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_신동준 기자/2019-07-23(한국일보)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근로자 중 그 피해로 인해 일을 그만두고 싶다거나(22.7%) 다른 회사로 이직을 원하는(28.3%) 등 회사를 떠날 의향이 있다고 답한 경우가 51.0%에 달했다. 본인이 아닌 동료의 피해 경험을 보고 직장을 떠날 의향이 있었다는 응답(56.8%)도 절반이 넘어, 직장 내 성희롱ㆍ성폭력 사건이 조직원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방증했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 현 직장에서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한 근로자의 36.5%가 자신의 의사에 반한 부서 이동 등 조치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겪으며 ‘원치 않는’ 퇴사 고민을 하다 보니 피해자 상당수가 관련 대책만 잘 운영된다면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퇴사 의사가 있다고 답한 피해자의 79.0%가 직장 내 성희롱ㆍ성폭력 가해자 등에 대한 엄중처벌이 이뤄지면 회사에 계속 다닐 생각이 있다고 답했고, 74.7%는 피해자 보호ㆍ불이익 금지 조치가 강화되면 계속 근무할 의사를 표시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종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피해자가 주로 여성이고 20~30대 경력 초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경력단절은 이들의 근로생애 전반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성희롱ㆍ성폭력 가해자를 엄정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 개정 노력과 성희롱 피해로 퇴사한 이들의 원활한 노동시장 복귀 지원책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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