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 몽골 침입에 대비해 쌓은 강원 인제군 한계산성이 사적이 된다.
문화재청은 설악산 천연보호구역과 국립공원 내 자리한 한계산성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23일 밝혔다.
한계산성은 설악산 내부의 한계산을 중심으로 동남쪽과 서남쪽으로 흘러내린 자연 암벽지대를 활용해 구축한 성벽이다. 성벽과 별도로 축조된 돈후(墩堠ㆍ경비를 서는 망대) 시설물을 갖추고 있어 몽골 침략에 맞서 사용한 입보산성(入保山城ㆍ들어가 지키는 산성)임을 알 수 있다. 성벽을 쌓는 방식, 부속시설물의 시대적 변화 양상을 살필 수 있는 대표적인 중세 산성으로 꼽힌다.
산성의 둘레는 약 7㎞에 달한다. 위쪽 상성(약 1.7~1.9㎞)과 아래쪽 하성(약 5~6㎞)으로 구분되는데,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에서도 이미 상성, 하성의 존재가 명확하게 기록돼 있다. 상성은 몽골 침입에 대비해 사용하던 곳이고, 하성은 후대에 반(反)원 정책을 추진 하면서 대대적으로 개축해 쌓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상성은 현재 남한 내에서도 험준한 곳에 축조된 산성으로 알려져, 주로 험하고 가파른 곳에 쌓았던 13세기 산성들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2014년부터 2년간 진행된 산성 조사에서는 고려, 조선의 다양한 유물이 확인됐다. 상성에서는 총 15개소의 구들 건물지, 부분적으로 남아 있던 성벽 기저부 등을 확인했고, 청자와 도기 조각 도 나왔다. 하성에서는 총 18개소의 건물지와 ‘至正十八年(지정십팔년)’(1358년, 공민왕 7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조각, 백자조각 등이 나왔다. 이를 통해 한계산성이 13세기 축조된 이래 고려 말에 다시 대대적으로 보수 또는 증축(혹은 개축)되어 조선 시대까지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한계산성과 관련된 역사적 기록물도 남아있다. ‘고려사’에 따르면 1259년(고려 고종 46년) 몽골에 투항한 조휘 일당이 몽골 군사를 끌고 와서 산성을 공격하였으나 점령하지 못했고, 오히려 산성을 지키던 방호별감 안홍민이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 습격해 모두 섬멸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한계산성은 30년 여몽전쟁의 최후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몽골 영향 아래 있던 쌍성총관부의 세력 확장을 저지한 국난극복의 역사적인 현장”이라며 “고려말 조선초 공민왕의 반원정책, 동해안 일대의 왜구 침략 대비 등을 목적으로 축조한 성곽 양식 등을 비교ㆍ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사적 지정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사적지정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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