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한일, 비상구는 없나] <1> 반세기 만에 터진 시한폭탄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日 한반도 강점’ 판단 유보한 채 미봉 
 한일 경제격차 축소ㆍ냉전 종식ㆍ中 부상 ‘65년 체제’ 손볼 때 
23일 일본의 경제 보복과 독도 침탈 행위 규탄 집회가 열린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평화의 소녀상 앞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어차피 시한폭탄이었다. 1965년 국교 정상화를 위해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맺은 청구권협정이 말하자면 ‘열린 텍스트’였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1910년부터 35년 동안의 한반도 강점이 불법이라는 한국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소련과 중국 등 당시 공산주의 세력과의 냉전에 대비하기 위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기치 아래 일본을 동맹으로 포섭한 미국이 패전국의 허물에 어느 정도 눈감은 터였다.

분단과 민족상잔의 비극 뒤 해양세력에 편입된 한국 역시 동맹 미국의 동북아시아 안보 협력 수요에 부응해야 했고,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데 쓰일 자금이 급한 것도 사실이었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의 정당성 판단을 유보한 채 일본으로부터 돈부터 받아 쓴 배경이다. 사실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받아내야 했지만, 한국은 행위가 적법하다는 전제의 정치적 보상금 정도로 여기며 넘어갔고 일본은 아예 명목을 독립 축하금으로 규정하며 청구권과의 연관성마저 지워버렸다. 결국 14년간의 양국 협상 결과물인 청구권협정은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모호했던 1965년 체제의 종언 

‘안보와 관련한 부적절한 수출관리가 있었다’는 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줄곧 밝혀 온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의 핵심 이유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일본 기업이 패소한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뒤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지 않는 한국 측에 보복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외교부 일본 담당 과장을 지낸 유의상 ‘식민과냉전연구회’ 이사는 18일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포럼에서 “수출규제는 일본의 화풀이이자 힘 과시”라고 진단했다. 그는 “어렵게 도출된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형해화한 데 이어, 청구권협정 체결 이후 별 탈 없던 강제동원 관련 합의를 뒤집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는데도 한국 정부가 아무 대책을 내놓지 않자 아베 총리가 화가 났다는 게 일본 고위 외교관의 전언”이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주요내용. 그래픽=김경진기자

일본의 불만은 한국이 자꾸 ‘골 포스트를 옮긴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22일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의 최대 문제로 ‘신뢰’를 언급하며 “한일 청구권협정에 위반하는 행위를 한국이 일방적으로 행해서 국교 정상화의 기초가 된 국제조약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불평했다. ‘악법도 법’이라는 국제사회의 논리를 설명한 것이지만, 한국은 적반하장이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징용이라는 반인도적 불법 행위로 국제법을 위반한 건 일본”(18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라며 맞받았다. 더불어 청구권협정을 통해 ‘외교 보호권’(국가가 외교적으로 국민을 보호할 수단)이 상실됐을 뿐 ‘개인 청구권’(개인의 피해 배상 요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데에는 양국이 동의했다는 게 한국의 일관된 입장이다.

현재 양국 공방의 핵심쟁점은 ‘판결에 따른 위자료를 누가 어떻게 지급해야 하느냐’로 요약되지만, 판결의 파장은 그 정도 기술적 논란에 제한되지 않는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23일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의 성격 및 그로부터 발생한 손해 구제방식을 한일 양국이 각자 다르게 해석하고 그걸 암묵적으로 용인한다는 게 ‘1965년 체제’의 기본 전제였다”며 “(한국 대법원) 판결은 국교 정상화 뒤 한일관계의 근본을 이뤄온 65년 체제의 구조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 동안 양국 정부가 자기 입맛대로 해석할 수 있도록 모호한 영역에 남겨뒀던 1910년 한일병합 조약의 불법성 여부에 대해 한국 대법원이 결론을 내려버리면서, 더 이상 불일치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게 남 교수 주장이다.

판결로 인한 균열 이전에도 이미 65년 체제는 흔들리고 있었다. 한일간 경제력의 격차가 반세기 동안 축소되고 냉전 종식과 함께 중국이 ‘슈퍼 파워’로 부상함에 따라 두 나라의 경제ㆍ안보 분야 이해관계가 엇갈렸고 그러면서 체제를 지탱해 오던 협력의 토대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협정 체결 뒤 50여년간 국제사회의 인권 의식이 성장했고, 이는 압축성장 시기에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인권이 한국 사회의 의제로 떠오르는 데에도 영향을 줬다.

 ‘화난 척’ 아베의 노림수 

전문가들 사이에는 징용 배상 판결로 촉발된 한일 과거사 갈등이 ‘한국 때리기’의 빌미로 활용되는 등 아베 총리에게 정치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일단 아베 정권이 일본 내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극우세력과 지지층을 결집해 헌법 개정의 동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최근 한일 마찰이 요긴하게 쓰이는 분위기다. 일본이 ‘전쟁 가능 국가’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은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로 잘 알려진 아베 총리의 숙원이다.

동아시아 기술 패권 경쟁에서 한국에 우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 성격도 일본의 무역 규제에 내포돼 있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18일 포럼에서 “한국의 산업 생태계를 흔들 수 있는 상시적 통상 무기를 이번 기회에 확보하려는 의도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반영됐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중국을 압박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사전 교감이 있었으리라는 게 정 교수 짐작이다.

양국의 상이한 안보전략이 갈등 요인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의 경우 전후 동아시아 질서가 지금처럼 유지되기를 바라지만, 한국은 타파되기를 원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일본이 중국과 북한 등을 겨냥한 한미일 삼각 안보 공조체제가 공고하게 유지되기를 희망한다면, 한국은 동북아 냉전 및 한반도 정전(停戰) 체제를 어떻게든 무너뜨리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배경이 중층적인 만큼 한일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면 되느냐에 대한 제언은 층위가 두 개다. 당장 해야 할 일은 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파장을 수습하는 것이다. 지난달 19일 한국 정부가 일본에 제시한 방안대로 한일 기업들이 피해 배상을 위한 기금을 출연하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며 도의적 책임이 없지 않은 한국 정부도 피해자 구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주문이다.

다른 하나는 차제에 동북아 및 한반도 평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모색하자는 조언이다. 남기정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인 신(新)한반도 체제의 목표는 동북아 냉전 및 한반도 정전을 극복하는 ‘남북일 평화삼각형’의 밑변으로서의 한일관계”라며 “일본이 1910년 조약의 불법성을 인정할 경우 일본의 기존 금전 조치들에 식민 배상금 성격을 부여하고, 더 이상의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 식으로 65년 체제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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