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수행에 안정성 필요한 시기’ 판단
야당의 후임 발목잡기ㆍ대권 조기경쟁 우려 작용
이낙연 국무총리가 21대 국회의원 총선거 불출마 의사를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스럽게 총리 교체 가능성도 수면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일본 수출규제 사태를 비롯해 국내외 경제 환경이 갈수록 나빠지는 상황인 만큼 이 총리가 안정적으로 내각을 좀더 이끄는 게 낫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이 총리의 인기가 나쁘지 않고 내각 관리능력을 인정받는 상황에서 굳이 판을 흔들 이유가 없다는 여권 핵심부 내 교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22일 청와대와 총리실, 여권 관계자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이 총리의 잔류로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하는 쪽으로 개각 폭이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 총리의 교감 아래 이 총리의 유임을 전제로 이르면 8월 초로 예상되는 개각의 폭과 성격이 재조정되고 있다”며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서울 종로 출마설을 전제로 이번 개각에서 이 총리가 교체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았다.
청와대는 실제 오는 9월 정기국회 이전 총리 교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련한 준비를 진행해 왔다. 여권에서는 구체적으로 부산·경남(PK) 출신 가운데 후임 총리 적임자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 감지되기도 했다. PK출신 총리 카드는 내년 치러질 21대 총선을 대비하는 포석 성격이 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 여성 총리 발탁 카드 또한 검토됐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총리 교체는 전적으로 문 대통령의 의중과 이 총리의 교감에 달린 문제”라면서도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게 참모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이 총리 잔류로 기류가 급변했다. 대내외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안정적 국정수행능력이 검증된 이 총리를 조기 강판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대정부질문 등에서 노련한 대응으로 대야 공세를 막아내는 등 문재인 정부의 확실한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됐다. 야당과의 관계가 최악의 상태라는 사정도 감안됐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이 국정발목 잡기로 일관한다고 보고, 총리 교체 카드를 섣불리 꺼냈다 낙마사태라도 벌어질 경우 국정동력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여당 한 관계자는 “총리는 국회 동의 없이 임명을 강행할 수도 없다”며 “이런 시기에 총리 교체는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권에서는 이 총리가 본격적으로 여의도 정치에 합류해 차기 대선주자 경쟁이 조기에 불붙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 또한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여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만큼, 이 총리로서는 자리에서 물러난 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대선주자로서의 행보를 할 수밖에 없다. 조기 대권 경쟁은 자칫 여권 내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여권 한 관계자는 “대권의 문턱에서 좌절한 총리 잔혹사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며 “이 총리 개인으로서도 안정적 내각운영 능력을 확인 받아 확실한 눈도장을 찍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2년 2개월째 재임하고 있는 이 총리가 임기를 이어가기로 하면서 최장수 총리 기록도 갈아치울 가능성이 크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에는 김황식 전 총리가 2년 5개월로 최장수 총리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87년 이전에는 정일권 전 총리가 6년여간 재임한 기록이 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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