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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실의 역사 속 와인] 프랑스 와인과 한국 토종닭이 만나면 ‘코코뱅’이 ‘꼬꼬뱅’

입력
2019.07.24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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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매주 수요일 <한국일보>에 찾아 옵니다. 2018년 한국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부문 우승자인 시대의창 출판사 김성실 대표가 글을 씁니다.

김성실 시대의창 대표가 임회선 셰프 등 지인과 함께 만든 꼬꼬뱅. 김성실 대표 제공
김성실 시대의창 대표가 임회선 셰프 등 지인과 함께 만든 꼬꼬뱅. 김성실 대표 제공

중복이 지났다. 복날에는 뭐니 뭐니 해도 삼계탕이 가장 인기 많은 복달임 음식이다. 필자 역시 삼복 때는 삼계탕을 즐겨 먹는다. 인삼주까지 한잔 곁들이면 여름마저 녹여 낼 만큼 기운이 돋지 않는가.

아무튼 닭과 술을 이야기하려니 자연히 떠오르는 프랑스 음식이 있다. 바로 와인에 닭을 뭉근하게 고아 만든 요리, 코코뱅이다. 코코뱅(coq au vin)의 ‘coq’는 ‘닭’을, ‘au’는 전치사(à)와 정관사(le)가 결합된 단어로 ‘~에’를, ‘vin’은 ‘와인’을 뜻한다. ‘와인에 푹 재운 닭고기’ 스튜인 셈이다. 쇠고기 요리인 뵈프 부르귀뇽과 더불어 와인을 소스로 이용한 프랑스 대표 요리다.

코코뱅은 프랑스 북동부 지역인 부르고뉴, 보졸레, 쥐라 지방에서 시작된 요리로 프랑스 전역에서 즐긴다. 부르고뉴는 피노누아로, 보졸레는 가메로 빚은 레드 와인에, 쥐라는 사바냉으로 빚은 뱅존느(Vin Jaune)에 닭을 넣고 버섯, 양파, 마늘, 허브 등으로 맛을 내 뭉근하게 졸여 만든다. 이렇게 요리한 코코뱅에 소스로 쓰인 와인을 곁들여 마시면 최고의 마리아주가 된다.

앙리 4세(1553~1610). 부르봉 왕조를 열었고 종교전쟁을 종식시켜 프랑스의 안정을 되찾았다. 위키미디어
앙리 4세(1553~1610). 부르봉 왕조를 열었고 종교전쟁을 종식시켜 프랑스의 안정을 되찾았다. 위키미디어

코코뱅에는 프랑스인이 사랑하는 왕 앙리 4세(1553~1610)와 관련한 유래가 있다. 앙리 4세가 브레스에 머물렀을 때다. 이곳은 프랑스가 자랑하는 브레스 닭을 생산하는 곳으로, 앙리 4세 역시 그 맛에 감탄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국왕이 된 그는 “하느님이 허락하신다면 나의 백성이 매주 일요일에 닭고기를 먹게 하겠노라”고 선언했다. 브레스 닭 요리 맛을 잊지 못한 왕이 ‘1주1닭’ 시대를 열 만큼 경제를 부흥시켜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그 맛을 보여 주고 싶었고, 그래서 탄생한 요리가 ‘코코뱅’이라는 설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추정도 있다. 14세기부터 유럽에는 흑사병이 만연했다. 이상기후로 소빙하기에 접어들자 농산물 수확까지 줄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숱한 전쟁 탓에 백성의 삶은 지극히 피폐했다. 와인 창고에는 쥐가 득실댔는데, 간혹 와인 통에 쥐가 빠지기도 했단다. 굶주린 사람들은 아까운 나머지 와인에 빠진 쥐를 졸여 먹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고 한다. 그 뒤 나라 형편이 좋아지자 쥐 대신 닭(늙은 수탉)을 넣어 코코뱅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서기전 1세기 즈음 로마의 카이사르가 흔히 갈리아(Gallia)로 알려진 골(Gaul) 지역을 정복한 뒤 진상받은 닭으로 코코뱅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프랑스의 상징인 닭. 왼쪽부터 프랑스혁명 당시 수탉을 상징하는 모자를 쓴 시민들을 그린 그림, 1998 프랑스 월드컵 마스코트인 푸틱스, 노트르담 대성당의 청동수탉상. 위키미디어ㆍFIFA
프랑스의 상징인 닭. 왼쪽부터 프랑스혁명 당시 수탉을 상징하는 모자를 쓴 시민들을 그린 그림, 1998 프랑스 월드컵 마스코트인 푸틱스, 노트르담 대성당의 청동수탉상. 위키미디어ㆍFIFA

어느 설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들이 전하는 바는 명확하다. 프랑스와 닭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이다. 로마가 전 유럽을 지배했을 때, 프랑스 골 지방의 원주민인 골족은 강력한 로마제국군에 맞서 싸웠을 만큼 용맹했다고 한다. ‘골족(Gaulois)’과 ‘닭(Gallus)’의 발음이 비슷하니, 그때부터 용맹한 수탉을 프랑스의 상징으로 여겼다.

프랑스혁명 때는 닭이 아침과 희망을 가져다준다고 여겨, 시민들이 수탉을 상징하는 모자를 썼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 때는 프로이센(검은 독수리)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프랑스인의 굳센 기상을 상징했다. 어디 이뿐인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마스코트 ‘푸틱스(Footix)’ 역시 수탉이다. 또 최근 화재가 난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 끝에도 청동 수탉상이 있었다. 첨탑은 소실됐지만 청동 수탉상은 잿더미 사이에서 회수했다고 한다.

과연, 역사성과 민족성을 모두 품고 있는 닭이야말로 프랑스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에 프랑스를 상징하는 닭이 만났으니 코코뱅은 그야말로 골 중의 골, ‘성골’인 셈이다.

김성실 시대의창 대표가 임회선 셰프 등 지인과 함께 만든 꼬꼬뱅. 김성실 대표 제공
김성실 시대의창 대표가 임회선 셰프 등 지인과 함께 만든 꼬꼬뱅. 김성실 대표 제공

며칠 전 필자는 지인들과 더불어 토종닭과 와인으로 코코뱅을 만들어 먹었다. 와인을 한 병 반이나 머금은 코코뱅은 여러 향신료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맛이 났고 와인과 잘 어울렸다. 프랑스 사람이 생전 처음 닭볶음탕을 맛보았을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

코코뱅은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으로 만드는 까닭에 지역마다 맛과 색이 다르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코코뱅은 ‘꼬꼬뱅’이라 쓰고 부르기로 했다. ‘꼬끼오 꼬꼬’ 우는 토종닭으로 만든 코코뱅이야말로 ‘꼬꼬뱅’이지 않을까?

시대의창 대표ㆍ와인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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