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다리 수영선수로 알려진 장애인 수영선수 출신 김세진이 21일 광주 시립국제수영장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광주세계수영선수권 대회 경영이 시작된 21일 광주 남부대 시립국제수영장. 관중석 한 켠에선 광주지역 지적 장애 수영 꿈나무들이 모여 세계 정상급 수영선수들의 활약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 옆엔 ‘로봇다리 세진이’로 잘 알려진 전 장애인 수영국가대표 김세진(22)씨가 함께 했다. 선천적 무성형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그는 인조다리로 국내외 수영대회에서 맹활약하다 2016년 선수생활을 접었다.

실제 장애인 수영 꿈나무들에게 김세진은 박태환(30)만큼 상징적인 인물이다. 200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장애인 수영대회에 출전한 뒤 2009년부턴 크고 작은 국내외 대회에서 150여개의 메달을 휩쓸었다. 본보와 만난 김씨는 “당시만 해도 한국 장애인 수영 선수가 국제 대회에 나간 일이 없어 주최측에서 ‘남한이냐, 북한이냐’를 물어보기도 했고, 입상을 했는데 태극기가 없어 어머니가 태극기를 직접 그린 일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이후 그는 국내 장애인 수영에선 동년배 최고 기량을 펼치며 수많은 대회를 석권했다. 2011년엔 전국장애인학생체육대회 최초로 7관왕을 독식했다.

장애인 수영국가대표 출신 김세진이 지난 2016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수영마라톤 출전을 위해 경기장 들어서고 있다. 김세진씨 제공

무엇보다 그는 10대 때부터 비장애인 대회에도 출전해 수영 종목에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씻기 위해 힘썼다. 김씨는 “2013년 뉴욕 허드슨강에서 열린 비장애인 수영마라톤(10㎞)에 참석할 당시엔 주최측이 ‘위험하다’고 참가를 막기도 했지만 막상 수영을 시작하니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보란 듯 전체 참가인원(200명 안팎) 가운데 21위를 기록했다. 18세 미만 선수론 1위였다.

2016년엔 자신 수영인생 마지막 대회로 삼은 리우올림픽 10㎞ 수영마라톤 예선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 패럴림픽이 아닌 비장애인 올림픽 예선이었음에도 2시간37분 만에 완주해 전체 70명의 참가자 가운데 51위에 올랐다. 비록 본선진출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남자 장애인으로선 최초로 이 대회에 출전한 그는 당일 대회장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으며 선수생활을 접었다. 그가 19세란 이른 나이에 은퇴를 택한 이유 가운덴 자신을 입양해 키운 어머니 양정숙씨를 위한 마음도 컸다. 김씨는 “수영장에선 여러 이유로 나의 훈련을 반기지 않았다”며 “훈련장을 구하기 위해 이사를 다니는 수고를 덜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로봇 다리 수영선수로 알려진 장애인 수영선수 출신 김세진이 21일 광주 시립국제수영장에서 장애인 수영선수들과 함게 경영 종목을 관전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현재는 한국뉴욕주립대에 다니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 시작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걸어온 수영선수 경험을 토대로 스포츠를 통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땐 메인프레스센터(MPC) 통역요원으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이번 대회엔 광주지역 장애인 선수들과 경영 경기를 함께 관람하고, 24일엔 광주체고에서 비장애인 선수들을 만나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토크콘서트도 열 계획이다. 김세진은 “앞으로 유엔스포츠개발평화사무국(UNOSDP) 같은 기관에 들어가 스포츠를 통한 사회적 역할을 해 나가는 게 꿈”이라고 했다.

광주=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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