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작가 최인훈(1936~2018)은 한국 근대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연 인물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거장이기에 앞서, 자신의 서재방을 차지하고 잠든 딸의 머리맡에 앉아 그의 낮잠이 깨길 기다리는 다정한 아버지이자,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 아홉 시면 사무실에 앉는 성실한 소설가 가장이기도 했다.
지난해 타계한 작가 최인훈의 1주기(23일)를 앞두고 딸 최윤경씨가 아버지를 회상한 산문집 ‘회색인의 자장가’(삼인)를 펴냈다. 광장과 밀실을 모두 살았던 회색인 아버지였기에, 최씨는 그의 딸로 사는 것을 ‘행복했다’거나 ‘불행했다’고 딱 잘라 말하는 대신 ‘복잡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씨가 ‘사실을 왜곡하여 신화를 만들지는 말자’는 원칙하에 담담한 필치로 써내려 간 글은 가장 복잡하기에 다채로운 인간 최인훈을 새롭게 만날 수 있도록 한다. 개인사와 아울러 아버지 최인훈이 딸에게 권장한 추천도서 목록과 소설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 등도 함께 실렸다.
1주기를 맞아 추모행사도 열린다. 23일 오후 5시 서울 마포구 다리 소극장에서는 문인과 제자, 지인과 가족들이 모여 최인훈의 문학과 삶을 추억하는 자리를 갖는다. 최인훈 희곡의 주연배우로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연극배우 박정자가 최인훈의 소설 ‘주석의 소리’를 낭독한다. 김병익 문학평론가와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준비한 추모의 글과 각계 인사들의 추모 영상도 준비돼 있다. 최인훈의 팬인 독자라면 누구든지 참석이 가능하다.
‘최인훈 전집’ 등 작가의 대표작을 간행해온 문학과지성사는 등단작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1959)를 비롯해 기존 최인훈 전집에 미수록 됐던 작품을 포함한 9편의 중단편을 엮어 ‘달과 소년병’을 낸다.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최인훈의 소설이 무섭도록 현재적인 것은 실험적인 글쓰기가 장르와 형식의 문제를 넘어서 근대 소설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둘러싼 민족 국가 이데올로기와 주체화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비판 사유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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