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환경서 성폭력 위험 노출… “결혼 이주여성 피해보다 더 심각” 
'미투'(Me Too) 운동 대열에 합류한 이주여성들과 여성인권단체 관계자들이 지난해 3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투'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6월 태국 여성 근로자가 농장주와 성관계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는데, 2,000만원에 합의했습니다. 2018년엔 한국에 18년간 거주한 카자흐스탄 노동자가 입국한 지 얼마 안 된 자국 여성에게 접근해 ‘한국 생활 편하게 하고 싶냐’며 성관계를 요구한 적도 있어요.”

“충남 지역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여성 두 명이 찾아와 농장주 성추행을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사장은 혐의를 부인하고 (범행) 증거는 없다 보니, 여성 분이 사업장을 바꾸는 것으로 끝났어요.”

21일 경찰대 부설 치안정책연구소가 발간한 ‘농촌 여성이주노동자 성폭력 피해 관련 경찰의 대응 방안’에 담긴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피해 사례다. 지난해 6월부터 4개월간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경기, 충북, 충남, 경남 지역의 성폭력 사건 담당 경찰관들을 심층 인터뷰한 내용이다.

최근 전남 영암의 베트남 이주여성 폭행 사건이 크게 관심을 끌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여성 이주노동자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몇 달 일하다 돌아갈 계절노동자들이다 보니 결혼 이주여성에 비해 피해 사실이 잘 드러나지도 않을뿐더러 관심도 상대적으로 적어, 그야말로 ‘인권 사각 지대’란 얘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농림어업분야에 종사하는 여성 이주노동자는 1만4,300명에 달한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비전문취업(E-9) 비자, 혹은 단기취업(C-4) 비자로 입국한다. 들어와서는 과수원이나 깻잎, 고추 등 손이 많이 가는 밭 작물 재배에 투입된다.

처우가 열악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농촌이라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고립된 환경에서 일한다. 제조업체는 그래도 남녀 공간이 구분된 기숙사를 제공하는 편이다. 하지만 농촌에선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같은 간이 시설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여기다 계절노동자라 우리 정부의 관리도 허술하다. 인권 침해시 대응 요령 등에 대한 교육이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래서 상대적으로 더 고립된 이들이 더 쉽게 성폭력 위험에 노출된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2016년 농업 분야 여성 이주노동자 202명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논밭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재배’ 분야 노동자의 경우 ‘원하지 않는 신체접촉’을 겪는 경우가 피해 건수의 42.9%를 차지했다. ‘강제적 성관계’도 14.3%에 이르렀다. 반면 그래도 여럿이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은 농산물 ‘선별ㆍ포장’ 분야에서는 접촉이나 성관계 대신, ‘외설적 농담’이 66.7%로 가장 많았다.

정부도 나름 대책은 내놨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성폭행 문제가 생기면 여성 이주노동자를 다른 곳에다 배치하는 ‘긴급사업장변경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것도 알아야 써먹을 수 있다. 서광석 인하대 이민다문화정책학과 교수는 “이주여성들에게 어떤 제도가 있는지 교육하고, 성폭력 사건이 접수됐을 때 수사와 사업장변경 등이 동시에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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