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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를 보다, 경제를 읽다] 저울을 든 대부업자, 리스크와 이자율 사이 균형추를 달다

입력
2019.07.20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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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환전상과 대부업 그리고 이자의 본질

※ 경제학자는 그림을 보면서 그림 값이나 화가의 수입을 가장 궁금해할 거라 짐작하는 분들이 많겠죠. 하지만 어떤 경제학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생각해보곤 한답니다. 그림 속에서 경제학 이론이나 원리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죠. 미술과 경제학이 교감할 때의 흥분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픈 경제학자,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 연재합니다.

퀜틴 마시스 ‘환전상과 아내’(1514),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70.5㎝×67㎝
퀜틴 마시스 ‘환전상과 아내’(1514),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70.5㎝×67㎝

퀜틴 마시스(Quentin Matsys, 1466~1530)는 우리에게 별로 알려진 화가는 아니다. 그는 플랑드르 화파를 창시한 화가 중 한 사람이다. 대표작은 16세기 초엽에 그린 ‘환전상과 아내(The Money Changer and His Wife)’(1514)다. 이 그림은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 작품이 없었다면 그는 무명의 화가로 잊혔을지도 모른다. 그는 섬세한 정밀 화법으로 부부의 모습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물도 신중하게 선택하여 배치하였다. 그림 속 배경의 물건들은 도덕적인 상징성이 가미된 일종의 알레고리(allegory)라고 할 수 있다.

성모 마리아가 그려진 기도서와 아래쪽 볼록거울에 비친 십자가 모양의 창틀, 그리고 선반 위에 놓인 사과 등은 지극히 기독교적인 상징물이다. 그 볼록거울 안을 자세히 보면 한 인물의 얼굴이 보이는데, 마시스가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것은 마시스의 그림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던 얀 에이크(Jan van Eyck)가 대표작 ‘아르놀피니의 결혼’을 그리면서 그림 속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은 것을 따라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성과 속의 극명한 대비

‘환전상과 아내’ 그림 속 왼쪽에 있는 남편은 금화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동전들의 무게를 신중하게 재고 있다. 당시 대부업자는 여러 지역의 동전들을 취급하게 되어 자연히 환전업을 겸하고 있었다. 마시스가 살았던 안트베르펜(Antwerpen)은 당시 플랑드르 지방의 상업 중심지였고 당연히 여러 나라에서 제조된 주화들이 통용되고 있었다. 안트베르펜은 당시 스페인 등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특히 스페인 무역상과 이탈리아 자본가들의 교역 거점도시이자 국제도시로 위상이 올라가면서 환전과 대부업이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환전상은 각종 주화를 저울로 재고 비교해서 각 동전의 교환 비율을 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따라서 환전상에게는 금, 은, 동의 함량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특히 금화의 무게를 속이지 않는 정직성이 생명 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저울은 심판의 날에 영혼의 무게를 재는 도구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저울을 쓴다는 건 거래의 투명성을 유지하는 행위이자 자신의 양심을 재는 일이었다.

남편과 부인의 일상생활을 담은 이 그림은 당시 유행하던 전형적인 장르화라고 할 수 있다. 15세기 이후 상업이 번성하던 도시국가에서는 종교화에 대한 수요는 점차 줄어들고, 상업과 무역으로 자본을 축적하게 된 신흥 상인계층을 중심으로 이런 종류의 장르화나 초상화가 크게 유행하였다.

그림의 오른편, 남편 옆에 앉은 아내는 성모 마리아가 그려진 기도서를 보면서 남편이 하는 일을 눈여겨보고 있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 있는 형국이다. 마시스는 기도서를 읽기보다는 세속적 욕망을 채워주는 금이나 돈에 눈길을 주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은연중 도덕적인 삶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 부부의 일상생활은 세속적인 일과 성스러운 일로 대비를 이룬다. 금화의 무게를 재고 동전을 세는 남편의 모습을 성모 마리아의 모습과 병치되게 그려놓음으로써 극적인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조삼모사가 어리석음의 징표?

대부업자에게 높은 금리를 받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고리대금업자는 문학 속에서도 흔히 등장하는데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도 주인공 안토니오가 배를 담보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지만 기한 내에 갚지 못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보듯이 유대인들은 셰익스피어 생존 당시에도 영국은 물론 이태리나 스페인에서 대부업으로 치부(致富)를 하면서 고리대금을 받는 것으로 악명을 날리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근대사회로 진입하기 전까지는 전통적으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악덕(evil)으로 여겼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부업은 가난한 계층에게는 물론, 왕이나 교회에게도 전쟁 또는 교회 건축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직종이었다. 그런데 주로 유대인들이 대부업에 종사했으니 이들은 눈엣가시 같은 족속이었고 피도 눈물도 없는 존재로 문학작품 속에서 묘사되기 일쑤였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은 나쁜 것인가? 현대경제학의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중국 고사에 보면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우화가 등장한다. 고사에 따르면 송나라의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원숭이를 많이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원숭이 수가 점차 많아지다 보니 먹이를 대는 일이 날로 어려워졌다. 그는 이런저런 궁리 끝에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들에게 나누어 주는 도토리를 앞으로는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朝三而暮四)’씩 줄 생각인데 어떠냐?” 원숭이들은 모두 화를 내었다. 그러자 저공은 조금 있다가 다시 말했다. “그러면 너희들에게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朝四而暮三)’씩 주면 만족하겠느냐?” 그러자 원숭이들은 모두 엎드려 기뻐했다고 한다.

이 고사는 잔꾀로 남을 속이는 사람이나 어리석게 속는 사람 모두에게 교훈을 준다고 열자(列子)는 ‘황제편’에서 가르치고 있다. 이 우화는 어리석은 원숭이를 빗대어 우둔한 사람들을 풍자한 것인데,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현자(賢者)로 칭송 받는 열자가 ‘아침 3개, 저녁 4개’와 ‘아침 4개, 저녁 3개’를 서로 같다고 여기는 것이 오히려 문제다. 이자율의 개념을 이해한다면 고사 속 원숭이들이 사람보다 훨씬 더 경제학적으로 사고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자는 욕망을 참아낸 대가

이자율은 경제에서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매개변수이다. 즉 미래가치를 현재화하는 시간할인율(time discount rate)로 작용한다. 한 재화의 미래가치는 현재가치보다 적다. 왜 그런가?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바나나 한 개와 내일의 바나나 한 개의 가치를 비교해 보면 분명해 진다. 오늘의 바나나는 지금 바로 소비할 수 있지만 내일의 바나나는 오늘 소비될 수 없다. 그러므로 같은 재화라고 해도 현재의 재화가 미래의 재화보다 더 가치 있고 선호되는 것이다.

이 사실은 경제학적으로 두 가지 함의를 지닌다. 첫째, 내일의 재화는 오늘 소비할 수 없고 내일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즉, 소비를 억제하고 ‘금욕’해야 한다. 여기에는 소비를 억제하는데 따르는 고통과 비용이 수반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가치가 더 크다는 것이다. 둘째, 오늘의 바나나는 지금 확실히 소비할 수 있지만 내일의 바나나는 소비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불확실성으로부터 생기는 위험이 따른다. 내일이 되면 바나나가 상할지도 모르며, 어쩌면 천재지변으로 바나나가 없어질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는 내일 바나나를 소비하기 전에 갑작스런 사고로 죽을 수도 있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소비 자체를 불확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자율은 항상 0보다 커야 한다. 지금의 소비를 미루면서 감수한 금욕에 대한 대가, 불확실성에 대한 프리미엄이 바로 이자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소비를 중요시하는 사회, 가령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하는 분위기의 사회에서는 이자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미래가치를 현재가치로 환원시키는 할인율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본처럼 미래의 소비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이자율이 아주 낮더라도 사람들이 은행에 저축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래에 대한 할인율이 낮은 사회이다.

◇돈, 잘 벌고 또 잘 써야

돈을 빌려주고 가혹할 정도로 고리를 갈취하는 행위는 사회통념상 사악한 것으로 치부된다. 샤일록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러나 월터 스콧의 소설 ‘아이반호’에 등장하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는 대의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돈을 쓰는 인물로 나온다. 이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 ‘아이반호’를 보면 리처드왕을 돕고 흑기사의 갑옷을 장만하는데 뒷돈을 대는 이가 바로 아이반호를 사랑하는 레베카의 아버지인 유대인 아이작이다.

돈은 벌기도 어렵지만 잘 쓰기는 더욱 어렵다. 돈에 대해서 세속적으로 집착하기보다는 정당하게 벌고 가치 있게 쓰는 균형 잡힌 경제관념을 갖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마시스는 환전상 부부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서 속세적이면서도 성(聖)스러움을 유지하는 균형 있는 삶의 모습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려는 것은 아닐까?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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