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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매부리 코…’ 인종주의는 낙인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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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매부리 코…’ 인종주의는 낙인에서 시작됐다

입력
2019.07.18 17:00
수정
2019.07.18 21:2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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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경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유럽인이 무암바족으로 알려진 아프리카 흑인의 머리 크기를 측정 도구로 재고 있다. 돌베개 제공
1900년경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유럽인이 무암바족으로 알려진 아프리카 흑인의 머리 크기를 측정 도구로 재고 있다. 돌베개 제공

미국 타임지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로 선정한 한국인 최초의 흑인 모델 한현민은 어린 시절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온갖 멸시를 받아왔다. “까만 애가 자장면을 먹네” “남의 나라에서 뭘 하느냐” “검은 피부 모델과는 일 못한다” 등의 모욕적인 발언은 그를 끔찍이도 괴롭혔다. 한현민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검은 피부는 벗어날 수 없는 낙인이었다.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 등 인종의 구분은 ‘분류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다. 일본 도쿄대에서 ‘영국의 우생학 운동과 모성주의’로 박사학위를 받은 염운옥 고려대 교수는 ‘낙인 찍힌 몸’에서 인간의 몸을 매개로 비합리적인 차별을 정당화 해온 인종주의의 장구한 역사를 짚는다.

백인우월주의는 노예제 폐지 이후 더 극심하게 전개됐다. 합법적으로 차별을 뒷받침해주는 제도가 없어지자, 백인은 흑인과 우열 관계를 입증할 다른 근거를 필요로 했다. 출발은 ‘몸’이었다. 피부색, 머리카락, 두개골, 안면각 등을 분류하고 측정하고 등급을 매겼다. 튀어나온 이마와 두툼한 입술, 짙은 피부색의 특성을 지닌 흑인은 인체측정학이라는 소위 과학적 방법을 통해 열등한 인종으로 낙인 찍혔다.

그러나 이는 구분 짓기 욕망에 불과했다. 피부색을 예로 들어보자. 피부색은 식습관과 기후에 적응한 결과다. 아프리카에 살던 인류의 조상은 원래 검은 피부색을 지녔으나 위도가 높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피부색이 옅어졌다. 유럽인의 흰 피부는 돌연변이였던 셈이다. 두개골의 크기가 지능을 비롯한 인간 형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억지스럽긴 마찬가지다. ‘백인이 흑인보다 뛰어나다’는 가설을 진실로 끼어 맞추기 위해 백인은 어른의 두개골을, 흑인은 아이의 두개골을 비교하는 꼼수를 폈다.

1940년 독일 나치의 나팔수였던 요제프 괴벨스의 지시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 ‘영원한 유대인’ 포스터. 유대인을 질병을 옮기는 불결한 쥐 떼에 비유해 반유대주의를 선전하는 영화다. 돌베개 제공
1940년 독일 나치의 나팔수였던 요제프 괴벨스의 지시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 ‘영원한 유대인’ 포스터. 유대인을 질병을 옮기는 불결한 쥐 떼에 비유해 반유대주의를 선전하는 영화다. 돌베개 제공

종교적 다름에서 비롯된 유대인을 향한 차별 역시 신체적 특성과 결부되며 더욱 공고해졌다. 유대인 남성이 매달 항문이나 성기에서 피를 흘린다는 속설은 가장 독특한 몸 담론이다. 유대인이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선입견에서 비롯됐다. 긴 매부리코는 탐욕스러운 유대인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다. 나치는 유대인을 돼지나 쥐에 빗대 비하했다. 인간에서 분리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유대인은 여러 지역에서 여러 민족과 함께 살아왔기에 외모만으로 식별되지 않는다. ‘예쁜 아리아인 선발대회’에서 유대인이었던 한 여자 아이가 1등으로 선발됐던 일은 몸을 근거로 인종을 구분한다는 것의 비논리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현대 들어 인종주의는 생물학적 특성을 넘어 말투와 옷차림, 집단 거주지 등 문화적 지표가 더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다. ‘신인종주의’ 현상이다.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들에게 테러리스트 오명을 씌우는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동남아 국가 출신의 결혼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 조선족, 예멘 출신 난민에게 가해지는 폭력적 차별의 시선은 신인종주의 사례로 볼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인종주의는 인류가 만든 거대한 낙인의 장벽이다. 거부와 저항을 통해 무너뜨리는 수 밖에 없다. 미국에서 인종 이슈를 정면으로 제기해온 흑인 여성 저널리스트 이제오마 올루오는 ‘인종토크’란 책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특권을 돌아보라”고 당부한다. 자신도 모르게 다수자로 특권을 누리는 사이 소수자는 그만큼 불이익을 당한다는 걸 깨닫는 게 필요하다. 또 행동해야 한다. 유색인 소유 기업을 지지하고, 유색인을 차별하고 착취한 기업의 제품은 불매운동을 벌이는 식으로 출발선을 바로 잡아 나가야 한다는 조언이다.

1992년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해 18년 동안 한국에서 일하다 고향 네팔로 강제추방 됐던 이주노동자 미누(본명 미노드 목탄)는 차별도 싫지만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건 더 힘들다고 했다. 타자가 아닌 동등한 주체로 관계를 맺어 나갈 때 낙인은 지워지고 상처는 아물 수 있다.

낙인 찍힌 몸

염운옥 지음

돌베개 발행ㆍ448쪽ㆍ2만원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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