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 장점마을 주민 국회 기자회견…환경오염과 암 발병 관계 규명 촉구
“(국회로) 버스 타고 오는 동안에도 장점마을의 부부 두 분이 더 암에 걸렸다고 합니다. 이런 ‘재난 마을’을 왜 환경부는 엉터리로 조사하고,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 선 장점마을 주민 최재철씨는 차오르는 분노를 숨기지 못한 채 말을 이어갔다. 80여명의 마을 주민 가운데 이날로 32명이 피부암, 담낭ㆍ담도암 등에 걸리고, 17명이 사망한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앞서 환경부는 이 비극의 원인이 2001년 마을 인근에 들어선 비료공장과 무관하지 않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정작 정확한 인과관계는 밝히지 않아 주민들의 반발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특히 제2, 3의 장점마을 같은 ‘암 마을’이 전국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 만큼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불가피해 보인다.
익산 장점마을 주민대책위원회와 정의당, 좋은정치시민넷 등은 이날 국회에서 ‘집단 암 발병 장점마을 환경오염 인과관계 인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는 이 자리에서 “인과관계를 밝히지 않고 개연성이 있다는 모호한 결론을 내린 환경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달 20일 장점마을 주민건강영향조사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비료공장에서 연초박 등을 고온 건조하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이 생성돼 마을로 날아들었다. 환경과학원은 “마을 주민들의 암 발생 비율이 높은 점을 감안할 때 공장과 암 발생의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비료공장이 파산해 내부 시설이 대부분 없는 상태라 가동 당시 배출량과 노출량 파악이 어렵고, 지역 주민 수가 많지 않아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해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 가능성이 확인된 만큼 주민들은 1차적으로 비료공장에서 보상을 받아야 하지만 해당 공장이 파산해 배상을 받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들 단체는 “환경부 조사 결과대로라면 앞으로 환경오염물질 배출업체가 피해를 입히더라도, 시설을 폐쇄하거나 철수하면 어떤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의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환경 피해 조사 대상이 인구가 많이 거주하는 도시지역이거나 폭발, 화재 등 사고성 환경피해가 아니면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관한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정부는 조속히 주민건강영향조사 결론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또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철저히 세워주실 것을 촉구한다”고 거들었다.
이 같은 ‘집단 암 마을’은 장점마을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현재 환경부는 주민들이 집단 암 발병을 주장하는 인천 사월마을과 경기 김포시 대물거리 등 2곳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인천 서구의 사월마을은 주변에 수도권 매립지가 조성되고 잇따라 폐기물 처리 공장이 들어서면서 각종 유해물질, 미세먼지, 소음으로 십수년 동안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사월마을은 성인 주민 120명 중 70%가 갑상샘 질환을 앓고 있고, 암으로 사망한 주민만 12명이다. 김포 대물거리 역시 공장 환경오염으로 암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전북 정읍시 이평면 정애마을에도 폐기물 재활용 업체가 세워진 후 58명 가운데 4명이 암으로 숨지고 다섯 가구가 타지로 이주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권태홍 정의당 사무총장은 이날 “다른 지역에서도 제2의 장점마을 같은 유사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이를 한 마을의 문제로만 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권 총장은 특히 “정부나 지자체 관리 기준이 옛날 기준으로, 새로운 발암물질이 법적 규제에서 빠져 있어 새로운 환경 기준을 정립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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