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엔지니어가 작업에 앞서 회로가 새겨진 모습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흔들리지 않고 시장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지난 13일 일본 수출 규제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사장단을 불러모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강조한 말이다. 삼성전자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올해 뿐 아니라 내년 일정까지 포함한 신규 반도체 양산 계획을 18일 공개했다. 외부적 요인에도 흔들림 없이 계획대로 반도체 생산 일정을 소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날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10나노급 12기가비트(Gb) 칩 8개를 탑재한 메모리 반도체 ‘12기가바이트(GB) LPDDR5 모바일 D램’을 이달 말부터 경기 화성캠퍼스에서 양산한다고 밝혔다. 내년부터는 평택캠퍼스 최신 공정 라인에도 양산 체계를 구축해 본격적인 대량 생산에 나서겠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미국 마이크론 등 경쟁사들은 내년 1분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LPDDR5 양산을 6~9개월 앞당겼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현재 최고 수준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에는 초당 4,266메가비트(Mb)를 처리하는 LPDDR4X가 탑재돼 있다. LPDDR5는 초당 5,500Mb 속도로 동작해 풀고화질(HD)급 영화 약 12편 용량에 달하는 44GB의 데이터를 1초 만에 처리할 수 있다. 때문에 5세대(G) 스마트폰에 적합한 칩이다. 삼성전자는 LPDDR4X 양산 개시 5개월 만에 신규 라인업을 추가하며 절대적 기술 우위를 다시 한번 시장에 확인시켜준 셈이다.

삼성전자 주요 대용량 모바일 D램 양산 연혁. 김문중 기자

삼성전자가 최신 반도체 선행 개발 소식을 전하며 ‘초격차 전략’을 확실히 드러낸 것은 한국 반도체 굴기를 꺾으려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아울러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거라는 글로벌 시장의 우려도 불식시키겠다는 전략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12Gb LPDDR5 D램.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측은 일본 수출 규제에도 반도체 양산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 공정 라인이 멈추거나 생산량의 차질이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에 세워둔 계획대로 신제품 양산은 차질 없이 추진된다”고 밝혔다.

반도체 회로선폭이 10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이하인 최첨단 미세 공정에 쓰이는 극자외선(EUV)용 감광액을 일본이 수출 규제하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영향을 받진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달 출시하는 ‘갤럭시노트10’에 들어가는 삼성전자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9825’가 7나노 EUV 공정으로 차질 없이 양산에 돌입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공정 과정은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삼성이 확보해 둔 재고로 단기적 공정 일정을 조절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일본산 EUV 감광액을 대체할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는 시그널로 해석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극자외선(EUV) 라인을 구축 중인 경기 화성캠퍼스 신규 공장 조감도. 삼성전자 제공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이라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눈이 삼성의 생산 차질이나 감산 여부 등에 쏠려 있다”며 “이러한 시기에 프리미엄 반도체 등에서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면서도 일본의 한국 ‘화이트(백색) 국가’ 배제 가능성까지 내다보며 소재 수급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백색 국가 제외가 실행되면 전자, 통신 등 1,100여가지로 규제 품목이 늘어날 수 있어, 스마트폰, 가전 협력사들에게 늦어도 8월15일까지 90일치 이상의 일본산 소재ㆍ부품 재고를 확보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지난 13일 사장단 회의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모든 사업부문에 비상대책을 세우라는 주문에 따른 조치다. 긴급한 재고 확보로 발생하는 비용 등은 모두 삼성이 책임지기로 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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