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 때 피해자들 제출 자료, 정부 관리 소홀로 분실
2005년부터 10년 남짓 진술 채록, 증거자료 있는 경우 20%뿐
日 압박할 사료 가치… 정부, 증언 기록ㆍ복원 연구 착수해야
일본 탄광 강제징용 피해자 조선인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의 첫 확정판결이 있던 지난해 10월30일. 13년 전 강제징용 피해자 네 명과 함께 시작한 소송이지만 이날 법정에는 이춘식(95) 할아버지만 홀로 출석했다. 나머지 세 명은 소송결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너이(넷)가 재판을 같이 했는데, 다 돌아가시고 혼자 허니까 눈물이 난다”며 “많이 슬프고 마음이 아프고 서운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강제징용 피해자 14명과 그 가족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 선고가 있던 지난달 27일. 재판부가 1심에 이어 또 한 번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법정에서 피해자는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피해자 원고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홍순의 할아버지마저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다 2015년 눈을 감고 말았기 때문이다.

미쓰비시중공업 항소심 재판정에는 대신 유족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유족들은 승소의 기쁨보다 고통을 호소했다. 홍순의 할아버지의 며느리 박영숙씨는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남편이 소송을 도맡아왔는데 남편마저 세상을 뜨고 나니 아무것도 모르는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며 “들은 얘기도 없고, 남아있는 것도 없어 혼란스럽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원고단 단장인 박상복씨 또한 “소송 한 번 진행할 때마다 유가족들 재판 참여 독려하고, 필요한 서류 준비해서 제출해달라고 다그치느라 진이 다 빠진다”며 “문제 해결이 늦어지면서 후손들까지 고통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배상과 사과는커녕 적반하장격으로 경제보복 카드까지 들고 나오면서 피해자들의 가슴은 새카맣게 타 들어가고 있다. 소송이 지연되면서 고령의 피해자들은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고 고통을 물려받은 유족들은 정확한 피해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일제의 강제동원령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노동력을 착취 당하고 가까스로 목숨만 보전해 귀환한 징용 피해자는 대략 110만명. 해방되고도 돌아오지 못한 이들까지 합치면 300만명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1939년 ‘국민징용령’으로 끌려가기 시작한 피해자 대부분은 이제 세상을 떠났고 생존자들은 대체로 90세를 넘었다.

강제징용 피해자진술 기록 채록. 강준구 기자

더 큰 문제는 민족의 아픈 역사를 증언해줄 피해자들이 속속 사라지는데도 일본의 만행으로 인한 피해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징용 피해자들이 증언을 하긴 했지만 그들의 아픈 이야기를 제대로 된 역사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것이다. 활자화되지 못한 기억은 뭉개지고 희미해지다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정부의 외면 속에 피해자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났고 피해를 입증할 자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완전히 외면한 것은 아니다. 1974년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뒤 77년까지 징용 피해자 신고를 받아 8,500여건에 대해 1인당 30만원씩 25억여원을 지급했다. 이어 2004년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고 대대적인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2006년까지 받은 피해 신고만 22만여건. 정부는 이를 토대로 피해 정도에 따라 1인당 최고 2,0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등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다.

하지만 피해기록을 남기고 보존하는 데는 소홀했다. 74년 청구권보상법률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피해자 신고를 받았지만 당시 신고자들이 제출한 증빙자료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남아있는 건 신고인명부와 보상금 지급대장뿐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 대부분이 해방과 동시에 가까스로 작업장을 탈출하느라 증거자료를 거의 챙기지 못했고, 그나마 가져온 몇 안 되는 사진이나 일기 등의 기록을 정부에 제출했지만 막상 정부는 관련 자료 보관에는 신경 쓰지 않은 것이다.

강제징용 관련 정부 보상 일지. 김경진 기자

정부는 2004년 재차 강제징용 피해 진상규명과 보상에 나섰지만 해방된 지 60년이 흘러 건질 수 있는 역사의 기록은 많지 않았다. 진상규명위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2006년까지 접수한 신고 가운데 증거자료가 있는 경우는 약 20%에 불과했다. 80%는 피해 당사자나 가족의 기억에 의존해 피해사실을 주장할 뿐, 이를 뒷받침할 사진이나 문서는 갖추지 못했다. 진상규명위 기록관리팀에서 활동했던 김명옥 국가기록원 사무관은 “대부분 신고자들이 기록의 부재를 호소했다”며 “개개인의 주장은 신뢰성과 객관성 면에서 활자나 사진으로 남아있는 공식적이고 가시적인 기록이 가지는 증거력에 비해 공신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때문에 진상규명위는 일일이 신고자를 찾아 다니며 피해 진술을 채록하면서 기록화하는 작업에 나섰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2004년부터 2015년까지 활동한 위원회가 피해자 진술을 채록한 건수는 2,000여건에 불과했다. 그나마 위원회 활동이 활발했던 2010년까지는 생존자를 상대로 피해사실을 채록하는 작업이 매년 적게는 5건에서 많게는 1,000여건 정도씩 꾸준히 진행됐지만 2011~2013년에는 한 건도 기록되지 않았다. 위원회 활동이 종료된 뒤로 생존자 구술을 채록하는 작업이 사실상 중단된 것은 물론이다.

외국 사례에 비춰보면 강제징용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역대 정부가 얼마나 소홀했는지가 도드라진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상대로 자행한 ‘홀로코스트’ 대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는 무려 50년간 자료를 모았다고 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 피해 생존자의 구술을 청취하고 관련 기업들이 보관하고 있는 문서를 확보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보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확보했던 피해신고 자료를 제대로 보관하지 못하고 해방 60년이 지나 10년 남짓 생존자 진술 채록 작업을 진행한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체계적으로 접근해 상당한 자료를 축적할 수 있었던 위안부 피해 진상규명 작업과 비교해도 강제징용의 역사 기록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위안부 피해 진상규명 작업이 강제징용 문제보다 조금 이른 90년대부터 시작되긴 했지만 접근 방법의 차원도 달랐다. 강제징용의 경우 피해자들의 기억을 복구하는 데 주력했다면 위안부 문제에서는 피해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 배경 등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연구하는 작업이 동반됐다.

대표적인 경우가 2016년 서울시와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함께 진행한 위안부 기록발굴연구. 인권센터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수집하는 선에 머물지 않고 실제 피해가 발생했던 지역을 방문해 자료 발굴 조사 등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증언을 구체화할 포로심문 자료, 기록 사진, 지도 등을 찾았고, 일본군이 운영한 위안소가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ㆍ태평양 전 지역에 광범위하게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영 교수 연구팀의 김소라 공동연구원은 “피해자들은 특정 장소에 고립돼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피해자 증언을 토대로 현장 조사를 실시하는 등 실증적 연구를 진행하면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위안부 문제를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본 북해도 탄광에 남겨진 강제징용 피해자의 낙서.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내외 사례에 비춰보더라도 정부가 강제징용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강력한 조언이다. 생존자들의 증언을 청취하고 기록하는 작업은 물론 강제징용 피해 역사를 체계적으로 복원하는 연구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작업은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일본정부와 기업이 수십 년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우편저금 자료와 후생연금명부 등의 확보에도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없으면 어렵다는 것이다. 최용근 공익인권변론센터 변호사는 “대부분의 유가족들이 소송에 참여하려 해도 피해자가 어느 회사, 어느 지역으로 동원됐는지 등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피해자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제징용 기록은 단지 피해보상과 일본을 상대로 한 법정 소송에 사용할 증거자료의 문제가 아니다. 여전히 과거사를 부정하며 보상은 물론 사과를 외면하고 있는 일본을 압박할 사료로서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다. 강제징용 문제를 장기간 연구하고 있는 정혜경 박사는 “기록이야 말로 피해자성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자 가해국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강조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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