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뉴시스

쉬는 주말 아이 손에 이끌려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을 꼭 봐야 한단 소릴 아이는 개봉 전부터 입에 달고 살았다. 개인적으로 미국 영화 제작사 마블 스튜디오의 슈퍼히어로 영화들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못 이기는 척 아이를 따라 나섰다. 시작은 여느 슈퍼히어로 영화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초반 반전 덕분에 어느 새 아이 못지않게 영화에 점점 빠져 들었다.

빨강 파랑의 현란한 원색 쫄쫄이 수트를 입고 사방팔방 거미줄을 쏘며 멋대로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에 심드렁한 어른 관객을 사로잡은 영화의 비결은 바로 홀로그램과 증강현실(AR)이었다. 최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이 총동원된 줄거리가 스크린 가득 진짜 같은 허상을 펼쳐 놓았다. 초등학생도 중년 어른도 스크린 속 고등학생 스파이더맨도 모두 그 허상에 속아 넘어갔다. 영화 중반 줄거리를 이끄는 핵심은 제아무리 슈퍼히어로라도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홀로그램은 빛의 세기나 방향, 구성 등을 조정해 허공에 3차원 입체 영상을 구현해내는 기술이다. 증강현실은 현실 공간에 컴퓨터 모델링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물체나 영상, 문자 등을 겹쳐 보이게 하는 기술을 뜻한다. 실제로는 없는 가상의 물체를 현실 공간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점에서 홀로그램과 증강현실은 비슷하다. 안경이나 헤드셋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누구나 또는 더 많은 사람이 가상의 물체를 볼 수 있도록 기술이 발달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다만 홀로그램은 가상의 영상을 현실 공간에 독립적으로 띄워 놓는 것이고, 증강현실은 가상의 영상이 현실 속 사람이나 사물과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 차이라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최근 홀로그램은 특정 제품이나 기업 관련 3차원 영상을 허공에 띄워 알리는 최신 광고 기법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운전석 앞 특수 유리를 통해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 정보를 표시하거나 주행 중인 길을 따라 가상의 표지판 이미지를 보여주는 최신 자동차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는 일종의 증강현실이다. 물론 영화 속 스파이더맨이 사는 세상과 비교하면 아주 초보적인 단계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 보여주는 홀로그램과 증강현실의 경계는 모호하다. 완전한 가상 상황에서 콘텐츠가 전개되는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을 섞은 혼합현실(MR) 기술을 표현한 듯한 장면들도 적지 않다. 등장인물들이 실제 세상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 공간이 갑자기 사라지며 가짜 공간이었다는 게 드러나는 장면은 증강현실인지, 가상현실인지, 혼합현실인지 딱 잘라 분간하기 어렵다. 등장인물들은 안경이나 헤드셋 없이 현실과 가상 공간을 자의로, 타의로 넘나들기도 한다. ‘홀로그램이냐, 증강현실이냐’ 같은 기술의 경계 자체가 의미 없어질 미래의 모습을 상상했음직하다.

홀로그램이나 가상현실, 증강현실은 5세대(G) 통신 시대의 ‘킬러’ 콘텐츠로 꼽힌다. 게임은 물론, 교육, 쇼핑, 관광, 의료,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5G 시장 선점을 위해 경쟁적으로 첨단 디스플레이 콘텐츠 확산에 여념이 없다. 지금은 체험 서비스 정도의 단순한 소비에 그치고 있지만, 기술 발달과 함께 관련 산업의 확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예상이다.

그런데 이런 첨단 디스플레이는 결국 인간의 시각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기술이다. 시각 시스템은 단순히 안구의 기능만을 뜻하지 않는다. 시각 정보를 최종 인식하고 판단하는 곳은 안구가 아니라 뇌다. 눈에 들어온 허상의 모습이 진짜라고 뇌까지도 믿게 만들어야 완벽한 기술이 된다. 가상현실을 체험한 사람이 종종 어지러움이나 메스꺼움을 느끼는 이유는 기술이 눈은 속였지만 뇌까지 속이진 못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이 아이들 교육이나 성장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스파이더맨 영화는 거짓을 진실로 믿게 만드는, 완벽한 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의 힘을 잘 보여줬다. 그래서 더욱 쉽게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를 본 많은 아이들이 깨닫길 바란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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