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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 표적] 미국 "동맹국들 호르무즈로 모여라" ... 영국 덩칸호 파견 응답

입력
2019.07.18 15:24
수정
2019.07.18 19: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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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혁명수비대가 걸프만에서 영국 유조선을 나포하려 했으나 HMS 몬트로즈의 개입으로 실패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사진은 지난 2005년 3월 22일 오만해안에서 훈련중인 HMA 몬트로즈의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이란 혁명수비대가 걸프만에서 영국 유조선을 나포하려 했으나 HMS 몬트로즈의 개입으로 실패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사진은 지난 2005년 3월 22일 오만해안에서 훈련중인 HMA 몬트로즈의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 국제 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목소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한국일보> 는 매주 금요일 세계 각국이 보유한 무기를 깊이 있게 살펴 보며 각국이 처한 안보적 위기와 대응책 등 안보 전략을 분석합니다.

걸프만에서 이란과 대치 중인 미국이 동맹국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세계 원유 공급의 젖줄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다국적 연합체(military coalition)를 구성해 이란의 군사적 위협을 견제하자는 제안이다. ‘항행의 자유’ 명분을 내걸었지만, 미국과 이란 간 최근 군사적 대치 상황을 고려하면 실상 대(對)이란 연합군을 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고민에 빠졌다. 미국의 일방적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ㆍJCPOA) 탈퇴로 촉발된 중동 위기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가 위험을 자초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끄떡하면 ‘안보 비용’ 청구서를 내밀며 동맹국들을 압박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요구를 마냥 무시하기도 어렵다. 미국의 어떤 동맹국이 성조기 깃발 아래 설 것인가, 또 과연 상선 호위는 실질적으로 가능한가 라는 물음이 뒤따른다.

미국 합동참모본부 의장으로 지명된 마크 밀리 현 육군참모총장은 11일(현지시간)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이란 인근 호르무즈 해협을 항행하는 유조선 상선 등 상업용 민간선박을 호위하기 위해 다국적 연합체 구성을 준비하고 있다”며 연합체 구성 계획을 공식화했다. 밀리 총장은 “(이 같은 계획은) 향후 수 주 안으로 진전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에 앞서 9일 호르무즈 연합체 구성 계획을 처음 언급했던 조지프 던포드 미 합참의장은 “자국 깃발을 단 유조선은 해당 국가가 호위하자는 취지”라며 “정찰ㆍ감시 능력 제공 등을 포함해 이 연합체를 지휘ㆍ통제하는 게 미국의 역할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동 위기 휘말린 영국 1순위

미국이 어떤 나라에 ‘호르무즈 연합체’ 참여를 요구했는지는 최근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일단 중동 내 이란의 오랜 숙적들의 참여 가능성은 어렵지 않게 점쳐진다. 한국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이번 걸프만 위기는 중동 내 친미 진영과 반미 진영 간 대결 양상을 점차 짙게 띠어가고 있다”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 걸프협력회의(GCC)를 주축으로 한 중동 내 반(反) 이란(수니파) 국가들이 연합체에 합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란 핵합의 유럽 측 주요 당사국인 영국과 프랑스도 거론된다. 이 중 프랑스는 이란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슬그머니 발을 빼고 싶은 표정이다. 반면 영국은 호르무즈 연합체에 동참할 1순위 국가로 꼽히고 있다. 이란 유조선 억류 조치로 이미 이란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탓이다.

지난 4일 스페인 남단 영국령인 지브롤터 당국은 이란 유조선 ‘그레이스 1호’를 억류했다. 이에 이란은 “우리도 영국 유조선을 억류할 수 있다”고 맞불을 놨고, 실제로 10일 이란 혁명수비대의 무장 쾌속정 여러 척이 호르무즈 해협 부근을 지나던 영국 유조선 ‘브리티시 헤리티지호’에 대한 나포를 시도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이란 쾌속정들이 영국 유조선에 정박할 것을 요구했으나, 마침 유조선을 호송하던 영국 해군 호위함인 몬트로즈호(HMS Montrose)가 이란 선박들을 향해 경고하고, 함포를 겨냥하자 물러났다는 것이다.

이란은 즉각 “최근 24시간 동안 외국 함정을 조우한 적이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영국 역시 “이란 측이 브리티시 헤리티지호의 진로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이란이 실제 영국 유조선을 ‘나포’하려 했는지까진 불확실하지만 자국 유조선 억류 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영국 유조선에 군사적 위협을 가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영국 BBC는 “영국 정부 역시 이란과의 정면 대결로 위협에 처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겠지만, 영국 깃발을 단 선박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사실 또한 외면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고 평가했다.

대(對)이란 강경파인 존 볼턴(왼쪽)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좌관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대(對)이란 강경파인 존 볼턴(왼쪽)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좌관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바레인 해군기지 모항 두고 듀크급 호위함 앞세울 듯

영국은 지난해 4월 바레인 수도 마나마 남쪽 항구인 미나 살만에 해군 기지를 개설했다. 중동 내 이슬람국가(IS) 세력 퇴거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기지에는 현재 호위함 1척과 기뢰소해함 4척, 군수지원함 1척이 전개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과 인접한 오만과 정규적인 대규모 군사훈련을 치르고 있는 등 유럽 국가 가운데 중동 지역 내 상시적 군사력을 운용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로 평가된다. 2003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에서도 미국과 영국은 동맹 명분을 앞세워 손발을 맞춰본 경험이 있다. 이란을 압박하고자 하는 미국 입장에선 최적의 파트너일 수밖에 없다.

영국은 이미 걸프만 해역에 기존 배치된 소형 호위함인 몬트로즈함 외 덩칸(HMS Dunkan)함을 추가 배치키로 결정했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영국 해군이 두 척의 호위함 외 9월 중순 또 다른 함정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호르무즈 연합체 동참 시 어느 정도의 추가 전력을 투입할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몬트로즈함이 지난해부터 바레인 기지를 모항(母港)으로 두고 이 지역에서 활동해온 터줏대감임을 고려할 때 연합체에서도 당분간은 몬트로즈함 또는 몬트로즈함과 비슷한 규모의 함정을 전면에 내세울 것으로 관측된다.

4,900톤급(듀크급) 몬트로즈함은 대함ㆍ대잠 작전이 모두 가능한 전천후 호위함이다. 대공 미사일 32개, 대함 미사일 8개, 어뢰 4개를 동시 탑재할 수 있으며, 공격용 헬리콥터도 2대까지 실을 수 있다. 2차 대전까지 900척의 군함을 거느리며 세게 최대 해군력을 보유했던 영국은 전쟁 뒤 꾸준히 해군 규모를 줄여 현재 70여척의 함정만 운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몬트로즈함을 포함한 듀크급은 여전히 영국 해군의 주포 격 함정으로 운용되고 있다. 몬트로즈함은 지난 3월 유엔 제재를 피해 해상에서 불법 환적을 벌이는 북한 선박들을 감시ㆍ적발하기 위해 일본 해역과 동중국해에 파견되기도 했다.

6월 13일 오만해상에서 이란으로 추정되는 세력으로부터 공격받은 유조선 프런트 알타이르호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다. EPA 연합뉴스
6월 13일 오만해상에서 이란으로 추정되는 세력으로부터 공격받은 유조선 프런트 알타이르호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내 미국의 양대 군사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연합체 합류 가능성도 자연스럽게 거론된다. 16일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브라이언 훅 미 국무부 이란특별대표는 19일 자국 주재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호르무즈 해협 연합체 구상을 설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훅 대표는 특히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원유 대부분은 아시아로 향한다”며 “아시아권 국가들의 동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 설명회에는 워싱턴의 참사관급 한국 외교관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방위장관은 16일 “현 단계에서는 자위대 파견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연합체 합류에 대한 보류의 뜻을 밝혔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공식 요청이 올 경우 검토하겠다”며 여지를 열어둔 상태다. 아덴만 해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해부대의 작전 반경을 일시적으로 중동권으로 확대하는 등 제한적인 수준에서 연합체에 동참할 가능성도 있다.

청해부대는 통상 충무공이순신함급(4,500톤) 구축함을 기함으로 특수전 전단(UDT·SEAL) 요원을 포함, 300여명의 병력으로 이뤄진다. 현재 작전 중인 대조영함은 5인치(127㎜) 함포를 비롯해 장거리 대잠어뢰, 함대공 유도탄, 30㎜ 근접방어무기체계 등 대함ㆍ대공ㆍ대잠 공격 무기를 두루 탑재했다. 청해부대 본연의 임무 중 하나가 공해 상 상선 보호 임무인 만큼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한국 또는 우방국 상선 호송 임무 수행에도 일단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가운데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내주 중 일본에 이어 한국을 단독으로 방문할 가능성이 제기돼 관심이 집중된다. 일본 언론과 한국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볼턴 보좌관이 한일 양국을 방문할 경우 한일 갈등 중재는 물론 호르무즈 연합체 동참을 공식적으로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 등이 연합체 활동에 대한 재정 지원 의사를 밝힌 가운데 미국이 한국과 중국, 일본을 포함해 영국과 네덜란드 등 주요 유럽 국가에 호르무즈 해협 공조 프로젝트 참여를 설득 중”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이 같은 흐름대로라면 호르무즈 연합체는 ‘미영동맹+수니파+알파(한국)’의 형태를 띨 수 있다.

연합군, 시아파 새로운 표적화 우려

반면 다국적 호르무즈 연합체가 구성된다 해도 과연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유조선을 하나하나 호송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BBC는 지적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가장 좁은 해로의 경우 폭이 40㎞가 채 안 될 정도로 협소하다. 여기에 이란 영해 12해리(22㎞)를 제외하면 호송 세력이 활동할 수 있는 해역은 더욱더 좁아진다.

예를 들어 하루 15~30척의 영국 상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데 호위함 2~3척으로 매번 이 선박들을 호송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마이클 프랭큰 전 해군 제독은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와의 인터뷰에서 “상선 하나하나를 호송하자면, 한 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날 동안 다른 배는 해협 밖에서 대기해야 할 텐데 이런 식으로 하자면 상황은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다수 해군 함정을 무턱대고 이곳에 투입하기도 쉽지 않다. 해군 전력이 늘수록 이란과의 충돌 가능성 역시 커지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 안보 전문가인 하산 아와드는 예루살렘포스트에 “영국 등이 개입할 경우 이란은 물론 중동 내 이란 우방국들의 저항을 겪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멘의 후티 반군 등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시아파 세력들의 표적이 미국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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