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에서 전기스쿠터 뒤에 타고 등교하던 어린이가 잠이 든 모습이 위험하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보인다. 류효진 기자

여행은 걷는 일로 시작해 걷는 일로 끝난다. 길이 나오면 걷는다.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서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골목은 다른 골목으로 이어지거나 공원이 나오면서 다른 동네의 시작을 알린다. 걸으면서 보면 풍경은 고생보다는 보물이다. 도시에는 많은 요소들이 있어 산책을 즐겁게 해준다. 길을 잃을라치면 멀찍이서 방향타가 되어주는 특색 있는 건물,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즐겁게 해주는 아름다운 물건들을 파는 상점가, 코를 자극하는 극한의 마력을 지닌 맛집들, 잠시 쉬어가라 유혹하는 나무 그늘과 커피잔이 놓인 파라솔, 한번 들어가면 빈손으로 나올 수 없는 쇼핑몰, 왠지 차분해지고 들뜨게 되는 서점, 언제나 만족도가 높은 미술관, 박물관들. 이런 장소들의 유혹 때문에 휴양지보다는 도시로의 여행이 더 끌린다.

앞서 말한 온갖 매력적 요소들이 있지만 내가 도시를 느끼는 방법은 무작정 걷기다. 일단 목표는 맛집이나 서점으로 잡고 거기까지 작은 길들로 걷는다. 택시도 버스도 타지 않는다. 보통은 적당히 넓은 중심도로에서 한 블록 정도 뒤의 골목길을 걷는다. 작은 길이나 골목에선 도시의 일상이 보인다. 산책하는 사람들, 간식거리를 들고 신난 소년, 학교를 마치고 마중 나온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 구석진 데서 노닥거리는 노인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바삐 가는 사람들…. 베란다에 널린 빨래는 이 도시의 집이 어떤 구조인지 대충 알려주는 재미난 요소다. 어느 도시에서나 긴 줄을 선 동네맛집과 파리만 날리는 안쓰러운 식당이 나란히 있고, 길모퉁이엔 큰 가방을 어정쩡하게 들고 서서 숙소를 찾는 여행객이 있다.

도시의 일상을 만나는 시간은 내게 가장 멋진 여행의 순간이다. 여행을 다녀와서 기억에 남는 것도 일상들의 모습이다. 도시를 만드는 것은 마천루도 큰 쇼핑몰도 아닌, 사람들의 일상이라 믿고 싶다. 유명한 건물이나, 쇼핑몰 등은 나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거기서 많은 시간을 보낼 만큼 대단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내게는 목적지로 가는 여정이 훨씬 재미있는 여행코스가 된다. 사람들이 인증샷을 남기는 장소라면 왠지 가고 싶지 않은 나의 아웃사이더 기질도 한몫한다.

이런 여행법은 내게는 매우 즐겁지만 동행인이 있을 경우 분쟁의 시발점이 된다. 신혼여행에서의 가장 큰 위기도 나의 이런 여행법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누구와 함께 걷는 게 서툴렀던 나는 습관대로 앞서서 걷기 시작했고 원피스를 입고 굽 높은 샌들을 신은 아내는 발이 부어오를 때까지 걸어야 했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을 때 신부의 다리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후였다. 아내에게 운동화를 사주며 만회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도 오랫동안 오로지 걷기만 한 신혼여행이라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 후로도 아내와 나는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수위 조절을 해가며 조심해서인지 큰 문제 없이 십칠년간 잘 흘렀다. 그러나 얼마 전 상하이에 함께 갔을 때 나의 조심성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오로지 걷는 그 버릇이 나오고 말았다. 결과는 예상대로다.

여기에는 나의 계산 착오가 있었다. 중국의 스케일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그 외 여러 나라에서는 도시 규모를 예상할 수 있어서, 이 정도 걷다 보면 끝이 나오고 그즈음엔 숨 돌리며 쉴 수 있는 공간이 짠하고 나오곤 했다. 그러나 상하이는 달랐다. 프랑스 조계지의 건물과 골목은 걸어도 걸어도 끝없이 이어졌고 황푸강변 산책로는 말 그대로 걷다 쓰러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오기가 생겨 끝까지 가보기로 한 순간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나는 이 도시의 스케일이 가진 비밀에 한걸음 다가갔다. 나는 이제 상하이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많이 타는 이유를 알고 있다. 이 도시는 무작정 걸을 수 있는 도시가 아니었다. 몸으로 상하이를 이해한 순간이었다.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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