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게 윤리는 사치재 아닌 생존재
무너진 저널리즘의 복원 요원하더라도
스스로를 지켜내는 노력 포기 말아야
지난 16일 서울 프레스센터 앞마당에서 언론자유 투쟁을 상징하는 조형물 '굽히지 않는 펜' 제막식이 열렸다. 언론자유가 거저 얻어진 게 아니듯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 역시 기자들 모두의 몫이다.

“희망을 버리면 절대 안 돼. 버렸으면 다시 주워 담아!” 유튜브 스타 박막례 할머니의 일갈이다. 어찌 보면 뻔한 얘기인데, 100만 돌파를 앞둔 그의 편들(박씨가 팬을 이르는 말), 특히 청년세대는 기꺼이 환호한다. ‘586 엘리트’의 흔한 꼰대질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다. 그러나 유튜브를 벗어나 마주하는 팍팍한 현실에선 다시 주워 담을 부스러기 희망의 틈입조차 좀처럼 허하지 않는다.

‘체감 희망’의 질량을 재 본다면, 빠르게 0에 수렴해가는 곳 중 하나가 언론일 것이다. 얼마 전 한 일간지 논설위원이 “시간 들이고 땀 흘린” 취재가 사라져가는 현실을 개탄한 칼럼을 썼다. 소셜미디어에 공유된 글에 나도 공감을 보탰는데, 상당수 젊은 기자의 삐딱한 반응을 접하고 적이 놀랐다. 자성을 담은 글조차 “아직은 먹고 살 만한 메이저 언론” 기자의 우아한 꼰대질로 여기거나, 생존을 고민하는 대다수 기자에게 직업윤리는 사치일 뿐이라는 거친 단언까지 나왔다.

안타깝지만 이해는 간다. 전 세대가 쌓고 키운 위기건만, 정작 취재 현장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을 떠 안고 있는 것이 젊은 기자들이기 때문이다. 거대 플랫폼이 모든 걸 집어삼키는 사이, 변화에 가장 둔감한 이들이 권한만 틀어쥔 채, ‘더 많이 더 빨리, 그러면서 깊이도 있고 차별화한 기사’를 써 내라는 어불성설을 쏟아내고는, 그들이 체화한 좌절과 냉소를 탓하는 건 염치없는 일이다.

요즘 젊은 기자들을 만나 속내를 들어본다. 그래 봐야 “어쩌겠어, 꾸역꾸역 최선을 다해 봐야지” 같은 허무한 결론이다. 그래도 애써 묻는다. “우리 왜 기자가 됐을까, 어떤 기자가 되고 싶나.” 머뭇거리며, 더러는 쓴웃음을 지으며 꺼내놓는 말들은 다르지 않다.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죠. 권력을 비판하고 약자를 대변하면서.” 신파극 대사처럼 진부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바랐고 사회가 기대한 기자의 업을 달리 규정할 말을 나는 알지 못한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한방의 묘책 따윈 없다. 미국 기자 프랭클린 포어가 ‘생각을 빼앗긴 세계’에서 역설했듯이 기술을 무기로 미디어 시장은 물론 스스로 생각하는 문화와 민주주의까지 잠식한 거대 테크 기업들에 강력한 브레이크를 걸어야 움치고 뛸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바뀐 세상에서 기성 언론이, 우리가 이 업을 지키며 살아 남으려면 저마다의 몫을 해내야 한다. 그중 하나가 “언론 윤리란 사치재가 아니라 생존재”임을 자각하는 일이다.

포어는 언론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건 “기자들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믿던 신화에 불과”하지만 “언론은 그 신화 덕분에 권력을 비판할 수 있었고, 독자의 변덕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으며, 언론에 필수적인 객관적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서 이렇게 단언한다. “오로지 직업적 규범만이 언론을 보호할 수 있다. 이 규범이 사라지는 순간, 언론은 끝이다.”

직업적 규범 혹은 생존재로서 윤리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자전거 페달을 하루하루 꾸준히 밟다 보면 어느새 허벅지에 단단히 붙어 더 멀리, 더 힘차게 나갈 수 있게 하는 근육의 힘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지금 당장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들을 꼽아보자. 익명 보도 줄이기, 남의 기사 베끼지 않기, 오보로 드러나면 기꺼이 인정하고 사과하고 바로잡기, 부당한 일에는 조직의 이해를 넘어 당당히 “노(No)!”라고 말하기… 언뜻 사소해 보이지만 우리 언론은 이런 것들조차 지키지 못해 신뢰를 잃었다. 요즘 뜨는 자기계발서를 인용하면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꾸준히 길러 거스를 수 없는 큰 변화를 일궈내야 한다.

전수안 전 대법관이 퇴임 당시 인용한 말이 떠오른다. 알피니즘의 거장 라인홀트 메스너를 묘사한 소설가 김훈의 글이다.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겨낸 만큼만 나아갈 수 있었고, 이길 수 없을 때는 울면서 철수했다.” 독자들께도 감히 당부하고 싶다. 기자들이 자신과 싸워서 이겨낸 만큼 나아갈 수 있도록, 냉소를 뺀 엄정한 질책과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시길.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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