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20> 푸젠 고촌 ②창팅고성과 페이텐고촌 
창팅고성 텐터우제 문화거리의 객가 두부피 상표.

푸젠 토루에서 서북쪽으로 약 2시간30분 가면 창팅고성(长汀古城)이다. 옛 이름은 정주(汀州), 푸젠의 ‘서대문’이다. 푸젠 남방 부족을 통칭 민(闽)이라 한다. 민서(闽西)의 중심지 창팅은 ‘객가수부(客家首府)’라 불린다. 당나라 성벽이 고스란히 남았다. 건축 당시 모습은 아니어도 풍파가 느껴진다. 정강(汀江)이 흐르고 성벽에는 깃발이 나부낀다.

푸젠성 고촌인 ‘창팅고성’ 성벽.
창팅 덴터우제 문화거리.
덴터우제 객가 상표, 객가건두부.
덴터우제 객가 상표, 객가생강사탕.
덴터우제 객가 상표, 객가 간식 가게.

고성에는 모두 12개의 문이 있다. 혜길문으로 들어가면 문화거리 덴터우제(店头街)와 연결된다. 홍등이 걸렸고 황색과 홍색 바탕천에 적힌 상호가 현란하다. 생강사탕이나 건두부 파는 가게나 식당엔 여지없이 ‘객가’가 등장한다. ‘즉식부죽(即食腐竹)’이라 쓴 포장에 눈썹, 수염, 머리카락까지 하얀 할아버지가 그려져 있다. 부죽은 대나무가 아니라 두부피다. 계산은 앱 결제 시스템인 즈푸바오(支付宝)나 웨이신(微信)으로 한다. 요즘 중국에선 여행 다니며 현금 들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창팅 광저문과 삼원각.
객가요리 툰주러우 파는 식당.

광저문(广储门)이 있다. 대문 위로 2층 높이 삼원각을 세웠다. 할아버지의 만돌린 연주를 듣는 할머니들이 쪼르르 앉았다. 어린이처럼 해맑게 수다 떠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다. 이곳은 객가요리의 고향이다. 식당으로 들어가 툰주러우(氽猪肉) 한 그릇을 주문했다. 창팅 객가인의 가정식 요리다. 돼지고기는 삶고 버섯과 두부는 살짝 튀기고 파와 마늘로 양념을 한다. 육수에 기름이 많지만 생각보다 담백하다. 주문하지 않았는데 밥을 준다. 중국인은 밥을 말아 먹지 않는다는 생각을 버렸다. 소고기였다면 어머니가 해주던 소고기국밥과 비슷했을 듯하다.

구추백 열사기념비와 기념관의 구추백 흉상.

창팅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10여 분 걸어 객가광장에 닿으면 건너편에 높이 30m의 기념비가 보인다. 러시아혁명의 실상을 중국에 알린 최초의 특파원이자 초기 중국공산당 지도자 구추백(취추바이ㆍ瞿秋白, 1899~1935), 그가 희생된 장소다. 장개석의 회유를 단호히 거부하고 의로운 죽음을 선택했다. 1927년 우한 8ㆍ7회의에서 퇴출당한 진독수를 대신해 최고지도자를 맡았다. 바로 옆 2층 건물에 기념관이 있다.

구추백 전시실의 사진. 왼쪽부터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소비에트 시절.
루이진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유적의 구추백 사무실.

저장성 창저우에서 태어난 구추백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베이징에서 러시아어전문학교를 다닌다. 늘 수석이던 그는 모스크바 특파원 생활을 한다. 공산당원이 된 후 귀국해 혁명문예 활동과 조직운동에 투신한다. 당 중앙을 이끌기도 하지만 문예 대중노선을 벌이고 노신과도 공동 작업을 한다. 루이진 혁명근거지인 중화소비에트공화국에 참가해 교육인민위원부를 책임진다. 상하이로 이동하던 중 밀고에 의해 체포돼 36살 나이로 죽음에 이른다. 기념관 전시실의 사진과 자료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40km 떨어진 루이진(瑞金)의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유적에 간 적이 있다. 그의 침실이자 사무실 안 책상에 오랫동안 앉았던 기억이 난다.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구추백,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책임에 충실했던 인물이다. 기회주의와 배반, 급진 노선이 팽배한 시기였다. 죽음을 앞둔 감옥에서 ‘부질없는 이야기(多余的话)’라는 글을 남겼다. 짧은 인생에 대한 자기 반성이자 유언이다. 혁명적 휴머니스트의 솔직담백한 토로, 슬픈 자화상을 유려한 필체로 그리고 있다. 기념관에 육필 사본을 전시하고 있다.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부질없는 이야기’(조현욱 옮김, 썰물과 밀물, 2018)를 참고했다.

나를 아는 이는 내 마음에 근심이 많구나 말할 테고, (知我者, 谓我心忧)

나를 모르는 이는 내가 무언가를 바라는구나 말할 테지. (不知我者, 谓我何求)

구태여 말할 필요가 있을까? (何必说?)

구추백 기념관에 전시된 ‘부질없는 이야기’ 육필 사본.

1만자가 조금 넘어 인생 이야기치고는 짧다. 머리말에 이어 ‘역사의 오해’ ‘나약한 이중인간’ ‘나와 마르크스주의’ ‘맹동주의와 이립삼노선’ ‘문인’ ‘고별’로 이어진다. 소제목만 읽어도 진심과 열정이 읽힌다. 부질없다고 했지만 치열하게 살았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창살 안에서 단번에 써 내려갔다. ‘고별’에서 고리키와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노신, 모순, 조설근의 책을 추천한다. 그리고 마지막 맺음말은 상상 초월, 눈물이 앞을 가린다.

중국의 두부도 아주 맛있는 음식, 세계 최고다 (中国的豆腐也是很好吃的东西,世界第一)

영원히 안녕! (永别了!)

웃어도, 울어도 된다. 그의 유머는 처연하다. 장개석의 총살 명령을 받고 ‘시사여귀(视死如归)’,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터내셔널가를 높이 부르며 사형장으로 태연하게 걸어갔다. 마지막 가는 길에 ‘김치가 세계 최고의 맛’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본의 이익에 좌우 격돌하고 배신이 만연한 세태다.

관자이산(Guan Zhai Shan) 역 표기.

시내버스로 30분이면 창팅남 역이다. 비수기에는 10분 전에도 기차표가 남아 돈다. 29분만인 오후 5시50분, 예정 시간에 관자이산(冠豸山) 역에 도착한다. 사전에 ‘치(豸)’는 ‘즈(zhi)’로 발음하지만, 이곳엔 ‘자이(zhai)’로 표기돼 있다. 방언이 굳어진 듯하다. 중국에 그런 동네가 많다. 관즈산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모른다. 기차역 플랫폼에 내려서야 알았다. 이제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촌’ 중 열 손가락에 꼽히는 페이텐고촌(培田古村)으로 간다. 얼핏 봐도 대중교통이 전무하다. 차를 대절해 30km 북쪽 오지에 도착하니 어두워진다.

페이텐고촌 오가대원의 거실.
페이텐고촌 골목 야경.
열린 문 사이로 본 페이텐고촌의 사당과 신위.

오가대원(吴家大院)에 짐을 푼다. 고촌의 저택 30채 중 하나로 숙박이 가능하다. 객실이 20개인 객잔이다. 거실의 ‘문괴(文魁)’ 편액은 오가대원이 예사롭지 않다고 말해 준다. 주인은 방을 안내해 주고 금세 사라졌다. 비가 내린다. 서둘러 야경을 보러 나선다. 처음 찾은 고촌의 밤에 지도 없이 쏘다니기는 어렵다. 홍등에 의지해 조금씩 더듬는다. 조용한 인기척, 개 짖는 소리를 몇 번 지나니 차츰 윤곽이 보인다. 골목마다 붙은 대련은 홍등이 반사돼 더욱더 붉다. 하얀 벽까지 물들이고 있다. 열린 문으로 사당도 보인다. 신위 주위는 새빨갛다. 찻집 간판을 사이에 두고 갈림길이다. 비가 점점 세차게 뿌린다. 1시간이나 방황한 덕분에 몸은 무거워졌다. 고촌의 빗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눈을 감는다.

오가대원 대문.

아침이 되자 다행히 날씨가 맑다. 쾌청하게 오가대원의 정문을 만나니 기쁘다. 편액 양쪽으로 관직을 상징하는 녹성(祿星)과 목숨을 관장하는 수성(寿星)이 나란히 마주보고 있다. 편액 위쪽에는 복을 상징하는 박쥐가 수두룩하게 조각돼 있다. 도교의 삼성신인 복록수는 상인 뿐아니라 모든 이의 바람이다. 문 옆 조각도 무시무시한 괴수가 아닌 자연이 주제라 포근해 보인다.

마을 입구에서 입장권을 샀다. 저녁이면 직원이 다 퇴근해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어제는 차를 타고 무사 통과했다. 일부러 늦게 들어가는 사람도 많다. 역사문화와 서민의 삶을 보는데 무임승차하는 것 같아 내키지 않는다. 마을 안에서 다시 나와 50위안 입장권을 사면 이상한 눈초리로 보거나 고마움의 인사치레를 받는다. 미소를 주고받으며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고촌에서 기차역으로 나가는 방법을 물어보면 친절한 설명을 듣게 된다. 여행도 하기 나름이다.

페이텐고촌 입구 ‘은영’ 패방.

당당하게 마을로 들어선다. 황제가 내려주는 ‘은영(恩荣)’ 패방이 있다. 크고 넓게 짓는데 가늘고 날씬해 팔등신 미인을 보는 기분이다. 흥미로운 글자도 있다. 소가 세 마리나 된다. 이런 삼첩자(三叠字)가 생각보다 많다. 금목수화토는 물론이고 입ㆍ혀ㆍ밭ㆍ돌ㆍ개ㆍ말ㆍ양ㆍ사슴ㆍ물고기ㆍ사람ㆍ아들도 있다. 나무 목(木)이 수풀 삼(森)이 되듯 발음이 바뀐다. 중국어 발음도 마찬가지로 예외 없이 모두 다르다. 소 우(牛) 한 마리는 ‘뉴(niú)’, 세 마리인 달릴 분(犇)은 ‘번(bēn)’으로 발음한다. 잘 쓰지 않지만 보는 재미가 있다. 느릿한 소가 돌진하면 구경할만하다.

문무묘 2층의 공자 상.
문무묘 1층의 관우 상.

문무묘도 독특하다. 명나라 초 처음 건축할 때 관우 사당인 관제묘였다. 청나라 중기에 한 층을 더 올려 공자를 봉공했다. 숭문상무(崇文尚武) 이념을 따르는 객가문화를 제대로 보여준다. 위아래로 공자와 관우를 함께 숭상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아침부터 관우에게 향화(香火)하는 노인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간다. 관우는 주창과 관평이 협시하건만 공간이 협소한 2층의 공자는 외로워 보인다.

대부제 대문인 삼대공서.
오씨사당의 ‘진사’ 편액.

큰길에 있는 대부제(大夫第) 대문은 삼대공서(三台拱瑞)다. 오씨 가문에 상서로운 일이 세 번 생겼다는 말인지, 세 단계를 높인 찬양인지 모르겠다. 담벼락과 기와로 꾸민 단정한 자세가 인상적이다. 가옥이 아홉 채, 천정이 열여덟 곳인 구청십팔정(九厅十八井) 양식이다. 페이텐고촌에서 가장 넓다. 중원과 남방의 건축 양식이 섞인 저택이다. 종횡으로 가옥이 연결된 구조다. 토루와 함께 객가인의 대표적인 주거 문화가 담겼다. 화려했던 시절이 지나 지금은 조금 쓸쓸한 공간이다. 사람의 호흡이 줄어서인지 목조 건물이 윤기가 없다. 뒤쪽에 오씨사당이 있다. 비가 다시 내려 ‘진사’ 편액 밑으로 피한다. 문괴(文魁)와 무괴(武魁)가 협시한다. 문무를 겸비한 가문을 유지하려는 객가인의 육성이 들리는 듯하다.

구공사 안에서 본 대문.
구공사 신위.

마을 한가운데 구공사(久公祠)에 이른다. 공사라는 이름의 사당이 21채나 된다. 공사는 종사와 달리 사람이 거주한다. 이웃도 편하게 드나들 수 있다는 뜻이다. 어제 밤 열린 문 사이로 본 신위와 똑같다. 안에서 바깥을 보니 안쪽 두 개의 호에 문신이 그려져 있다. 조상을 아버지 고(考)와 어머니 비(妣)로 구분했다. 제사 때 지방을 써 봤으면 친근한 한자다.

페이텐고촌의 골목.

촘촘하게 쌓은 담장 따라 자갈 깔린 골목이 반질반질하다. 비 내린 후여서 살짝 미끄럽다. 할아버지는 비가 그쳤는지도 모르고 우산을 썼다. 사통팔달 이어진 골목은 직선 아닌 곡선도 있다. 동선이 참 부드럽다. 찻집 간판을 사이로 갈림길이다. 마을을 돌고 돌아 순환하도록 조성된 도랑, 물은 고여 있지 않고 비 온 뒤라 물살도 조금 빠르다. 담벼락에는 눈높이에 붉은 구호의 흔적이 수두룩하다. 일부러 지운 듯 하얗거나 붉게 덧칠해 지저분하다. 처음 구호 그대로 두면 좋지 않았을까.

관청 대문과 깃대.

다시 큰길로 나가면 관청(官厅)이 있다. 대부제처럼 구청십팔정의 대형 역참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현대판 5성급 호텔이라 한다. 차를 대접하더니 목조 문양을 가르키며 자랑스럽게 설명한다. 봉황과 해, 용과 호랑이, 원숭이와 사슴, 기린과 별이 주인공이다. 모두 덕담이자 길상이다. 순서대로 단봉조양(丹凤朝阳), 용등호약(龙腾虎跃), 왕후복록(王猴福鹿), 기린성서(麒麟星瑞)다. 재미난 해학이다.

300년 넘은 관청의 목조각 예술.
연못에 반영된 관청 대문과 깃대.

자세히 보면 호랑이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원숭이 머리로 조각했다. 원숭이 후(猴)는 제후 후(侯)로, 사슴 녹(鹿)은 복 록(禄)으로 살짝 바꾸면 이해된다. 기린 머리는 몰상식한 누군가 뜯어갔다. 앞과 뒤를 해와 달로 맺은 뜻도 상큼하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 때 처음 건축돼 3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 관청에서 유일하게 300년 역사를 간직한 조각품이다. 대문 앞에는 반월형 연못이 있고 깃대 한 쌍이 배치돼 있다. 연못에 반영된 긴 깃대가 관청의 권위를 잘 보여준다.

페이텐고촌 후문의 ‘성지’ 패방.

오가대원을 나와 페이텐고촌을 떠난다. 입구에서 알아낸 정보, ‘후문으로 가면 차량이 있다.’ 관자이산 역으로 가는 7인승 차량이 1시간에 한 대씩 왕복한다. ‘성지(圣旨)’ 패방 옆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많이 낡았지만 서원만 6개 있던 마을이다. 800년 역사, 300여 가구가 사는 마을에 과거를 통과한 인재만 200명이 넘고 진사는 20명 이상 배출한 유서 깊은 고촌이다. 장사로 세를 불린 객가인이 교육에도 힘쓴 덕분이다. 중국을 다니다 보면 하루 더 묵고 싶은 고촌이 많다. 페이텐고촌은 한 달도 살겠다. ‘배우고 읽힐’ 역사문화가 너무 많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라이프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