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밸리, 혁신의 심장을 가다] <6> 채식고기 스타트업 
 진짜 계란 식감 ‘저스트에그’빌 게이츠도 반해 
 육즙 흐르는 채식고기 버거킹 임파서블와퍼 등 변신 
지난 5월 1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식품회사 저스트(JUST)의 재료창고에서 우디 라지미 글로벌 식품 공급 담당자가 저스트에그의 원료를 설명하고 있다. 신혜정 기자

“여기가 우리 회사의 계란이 만들어진 곳입니다.”

지난 5월 16일 오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폴섬가에 있는 한 식품회사 연구실. 원료창고에 들어서자 300여개의 큼지막한 보관통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계란 탄생지’ 라는 설명과 달리 닭은커녕 계란 한 알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직원인 우디 라지미가 보여준 것은 각종 콩과 녹두, 식물분말. “우리가 개발한 저스트에그(JUST egg)에 들어가는 재료는 오직 식물성 단백질입니다. 진짜 계란과 똑같은 맛과 식감을 만들기 위해 65개국을 돌아다니며 1,000여가지 식물을 연구했죠.” ‘글로벌 식물 공급 담당자’ 라는, 낯선 직함을 가진 라지미가 그간의 노력을 자랑하듯이 설명했다.

‘식물성 계란’. 저스트(JUST)사는 과학적으로도 불가능해 보이는 이 계란을 발명한 푸드테크(foodtech) 스타트업이다. 저스트사가 닭 없는 달걀을 만들게 된 계기는 창업자 조시 테트릭(39)의 젊은 시절 경험 때문이다. 로스쿨을 갓 졸업한 20대 시절 아프리카로 자원봉사를 떠난 그는 굶주리는 아이들을 수없이 봤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인 계란이 지저분한 공장식 양계장에서 살충제 덩어리로 생산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테트릭은 변호사가 되길 포기하고 대신 2011년 저스트사의 전신인 ‘햄튼크릭’을 창업한다. ‘깨끗하고 안전한, 그리고 콜레스테롤 걱정 없는’ 계란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식물 전공도 아닌데다 빈털터리였던 테트릭의 무모한 도전은 2년만에 성공했다. 테트릭은 생명공학자ㆍ식물학자ㆍ요리사 등 전문가들과 함께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식물 단백질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녹두단백질을 가열하면 계란과 가장 비슷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녹두와 강황, 당근 등 10여개 식물의 단백질이 합쳐져 스크램블에그 등으로 조리할 수 있는 ‘저스트에그’가 탄생했다. 수천 가지 식물의 단백질 특성을 질감 맛 산성도 등 항목별로 분석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뒤 성분분석을 한 결과다.

지난 5월 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저스트(JUST) 본사에서 요리사인 조시 하이먼 제품개발매니저가 스크램블에그를 만들고 있다. 신혜정 기자

저스트에그가 계란의 모양을 흉내낸 정도의 제품이었다면 그저 신기한 발명품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저스트는 유명 요리사들을 스카우트해 ‘진짜 맛있는 계란’을 만드는 일에 진력했다. “멋진 인테리어에 명품 식기, 건강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레스토랑일지라도 음식이 맛없으면 망하니까요.” 요리사 출신인 조시 하이먼 제품개발매니저의 설명이다. 그가 저스트에그에 버섯과 야채를 곁들여 뚝딱 만들어준 스크램블에그를 입에 넣자마자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평소 스크램블에그를 즐겨 먹는 기자의 입맛에도 진짜 계란과 차이가 없었다.

이 같은 발상에 감탄한 건 유명투자자들도 마찬가지. 빌게이츠는 자신의 블로그에 직접 저스트에그의 맛을 칭찬하며 저스트사의 투자자가 됐고,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 홍콩 최대부호 리자청 등도 투자했다. 3만7,000달러(약 4,300만원)로 시작한 저스트사가 현재까지 이끌어낸 투자는 2억2,000만달러(약 2,600억원)에 이른다. 저스트에그는 이제 북미는 물론 유럽ㆍ아시아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한국의 계란 유통업체인 가농바이오와 제휴해 한국 진출을 선언했다.

저스트(JUST)사가 개발한 식물성 계란패티로 만든 샌드위치(왼쪽)와 제품계발단계인 ‘우유 없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신혜정 기자.

‘2019년은 비건(완전 채식주의자)의 해’. 지난해 말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아렇게 대담한 전망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실리콘밸리에서 등장한 각종 육식대체상품의 역할이 컸다. 저스트에그는 물론이요, 겉은 영락없는 함박스테이크나 소시지이지만 동물의 피 한 방울도 안 섞인 식물성 고기가 이미 실험실을 나와 마트와 음식점에서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비거노믹스’는 밀레니얼세대(Millennialsㆍ1981~1996년생)가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설명이다. 두꺼운 햄버거를 즐기는 것에 만족하던 기성세대와 달리, 햄버거 패티 한 장을 생산하는 데 발생하는 탄소발자국부터 동물의 고통, 건강까지 걱정하는 청년세대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올해 5월 2일 채식고기 스타트업 비욘드미트의 나스닥 상장은 채식 열풍을 증명했다. 2009년 창업한 비욘드미트는 콩단백 등 다양한 식물성 단백질을 이용해 식물성 햄버거패티와 소시지를 만든 기업. 역시 유명인들에게 꽤나 사랑을 받긴 했지만 올해 기업공개 직전까지도 현지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상장 당일 1주 25달러였던 주식은 하루 만에 163% 폭등해 현재 16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불과 2주 뒤 전 세계의 관심을 받으며 기업공개를 한 우버의 주식이 상장 하루 만에 8% 하락해 여전히 공모가(45달러)를 뛰어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성공의 비결은 채식고기가 단지 채식주의자의 ‘필수품’이 아니라 모든 소비자를 위한 ‘옵션’이라는 데 있다. 시장조사업체 민텔에 따르면 2017년 미국 밀레니얼세대 10명 중 8명은 채식고기를 소비했다. 유통업체 크로거사 역시 지난해 상반기 비욘드미트 구매자의 93%가 ‘진짜 고기’도 샀다고 분석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레드우드시티의 스타트업 ‘임파서블푸드’의 채식고기는 실제 고기처럼 육즙이 흐른다. 임파서블푸드 제공.

물론 채식고기가 ‘진짜’처럼 맛있지 않았다면 아무도 이 ‘가짜’에 지갑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기업들이 사활을 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무기는 ‘과학기술’이다. 비욘드미트의 경쟁사인 임파서블푸드는 고기 특유의 ‘피맛’을 내기 위해 혈액 속 헤모글로빈에 집중했다. 연구를 통해 식물에서 헤모글로빈 단백질을 추출하는 방법을 찾아냈고 실제 빨간 육즙이 흐르는 채식고기를 시중에 출시한 것이다. 도매유통에 집중하는 임파서블푸드는 이미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구내식당은 물론 패스트푸드점까지 점령했다. 이들이 버거킹과 함께 만든 ‘임파서블와퍼’는 지난 5월부터 미국 일부 지역에서 판매 중이다.

임파서블푸드 측은 “밀레니얼세대 소비자들이 자기 자신은 물론 자녀들을 위한 식재료로 우리의 제품을 선택하고 있다”며 자사의 미래 가능성을 확신했다. 더구나 1996년 이후 출생한 Z세대 역시 기후변화를 막자며 등교거부 시위까지 할 정도로 환경에 관심 많은 세대이지 않은가. ‘지속가능성보고서’까지 펴내며 환경친화적 생산공정을 홍보하는 임파서블푸드가 성공을 자신하는 이유다. 글로벌시장조사기업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0년 12억달러였던 대체육류시장 규모는 2016년 18억달러로 성장했고, 2020년엔 3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샌프란시스코=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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