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의 계절’ 하면 대개 김장철인 11~12월을 떠올리지만, 포장김치 제품은 성수기가 한여름이다. 겨울에 담근 김장 김치가 다 떨어진 시기라 포장김치로 여름을 나는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1년 중 7~9월의 포장김치 판매량이 전체의 40% 가까이를 차지한다.
16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올 여름 포장김치 시장을 잡기 위한 업체 간 경쟁이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대상의 대표 김치 브랜드 ‘종가집’은 지난 9일 ‘생생아삭김치’와 ‘톡톡아삭김치’를 출시했다. 각각 덜 익은 김치와 잘 익은 김치로, 숙성도에 따른 소비자들의 김치 선호도를 고려한 제품이라고 대상 측은 설명했다. 이에 질세라 CJ제일제당은 바로 다음날 ‘비비고 보쌈김치'를 내놓았다. 업계 관계자는 “포장김치 시장의 양대 산맥인 두 업체가 하루 간격으로 신제품을 선보이며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포장김치 시장은 수년 전까지 종가집을 앞세운 대상의 독무대였으나 CJ제일제당이 2016년 비비고 브랜드 김치 제품을 출시하며 판도가 출렁였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16년 55.7%와 19.8%였던 대상과 CJ제일제당의 시장점유율 격차는 지난 4월 기준 각각 42.7%, 39.2%로 크게 좁혀졌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정이 많아지고 이른바 ‘김포족(김장을 포기한 사람들)’이 늘면서 포장김치 시장도 꾸준히 커지고 있다. 종가집이 지난해 말 주부 2,88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56%가 “김장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 중 절반 이상(54%)은 “포장김치를 사먹겠다”고 답했다. ‘담가 먹는 음식’에서 ‘사 먹는 음식’으로 김치의 개념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포장김치 시장은 2016년 1,870억원에서 작년 2,52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포장김치 역사는 벌써 30년이 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전통 음식인 김치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상품화를 적극 추진한 게 시초다. 당시엔 ‘포장김치’ 대신 ‘공장김치’나 ‘가공김치’라는 표현을 썼다. 포장김치 상품화 성공은 1989년 종가집이 탄산가스 잡는 기술을 개발하면서부터다. 발효와 숙성 과정에서 ‘숨을 쉬는’ 김치의 특성 때문에 탄산가스가 발생하는데, 이 때문에 김치를 진공 포장하면 포장재가 부풀어 오르거나 터지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종가집은 탄산가스를 붙잡아 두는 가스흡수제를 포장 안에 넣는 기술을 개발했고, 이듬해 특허를 출원해 1991년 업계 최초로 KS마크를 획득했다.
발효 기술의 발달도 포장김치 성장에 한몫했다. 집에서 담가 땅속에서 숙성시키는 김장 김치가 겨울 내내 시원하고 깊은 맛을 내는 비결은 유산균이다. 유산균 수가 줄면 김치가 신맛이 난다. 업체들은 김치유산균을 배양해 이를 포장김치에 직접 주입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포장김치가 톡 쏘는 탄산의 맛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건 이 덕분이다.
유산균의 활발한 번식을 돕기 위해 무거운 돌을 위에 얹어 김치가 국물 속에 푹 잠기도록 했던 전통 항아리를 본뜬 기술까지 등장했다. CJ제일제당은 2017년 특수 설계한 밸브와 필터, 누름판 등을 결합해 포장김치가 늘 국물에 잠기도록 하는 용기를 개발했다. 이 용기는 ‘듀폰 포장 혁신상’에서 금상을 받는 등 비비고 김치의 급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포장김치 과학’의 성과는 내수 확대에 이어 수출 증대로 이어졌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5년 7,300만달러(약 930억원)였던 김치 수출액은 작년 9,700만달러(약 1,141억원)까지 늘었다. 오랫동안 일본이 김치의 주요 수출국이었지만, 최근 미국과 유럽, 대만, 아시아로 수출 국가들이 확대되고 있다. 할랄 인증을 받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무슬림 시장으로도 수출된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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