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 <33> 결혼이주여성
※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한 두 가지 측면에서는 소수자입니다. 자신의 불편은 크게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의 소수자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냉소적인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화요일 한국 사회에서 유독 힘들게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모습을 들여다 봅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이화(가명ㆍ38)씨는 중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다. 한국인 시아버지의 지인 소개로 남편을 만났고 2009년 랴오닝(遼寧)성에서 결혼해 한국으로 건너왔다. 남편은 열일곱 살이나 많고 중국어도 못했지만 편지로 필담을 나눌 때면 한자 글맵시가 진짜 예뻤다고 한다. 이화씨는 고민 끝에 2013년 한국 국적을 얻었다. 한국에 사니까 남들처럼 당당하게 살려면 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러 갔을 때마다 남편을 불러오라는 말을 듣는 일도 귀찮았다.

한국 국적을 얻었지만 그는 3년 전 첫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 자신이 여전히 이방인임을 깨달았다. 학교에서 만난 다른 엄마들은 이화씨를 카카오톡 단체방에 초대하겠다고 말했지만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이런 일은 학기마다 반복됐다. 한번은 초대를 받았지만 이상하게 방이 조용했던 일도 있다. 이화씨만 빼놓고 다른 단톡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요즘은 심리치료를 받는다. “이럴 거면 왜 귀화했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소연하는 이화씨는 한국사회가 붙인 꼬리표를 떼어내고 싶다. ‘후진국에서 온, 발음이 어색한, 말을 잘 못하는, 매매혼으로 팔려온 여자’라는 꼬리표다. 2017년 기준 23만여명에 달하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매일처럼 부딪히는 편견이다.

지난 15일 서울 지하철2호선 신도림역 주변의 한 회의실에서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원들이 한국일보 기자와 만나 이주여성들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이주여성연합회 제공
◇국적 취득해도 ‘이방인’ 편견에 상처

최근 알려진 베트남 여성 폭행피해 사건 이후 결혼이주여성의 불안정한 체류 자격, 남편에게 사실상 종속된 채 살아야 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결혼이주여성들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문제의 뿌리는, 자신들을 존중받아야 할 한국인 배우자가 아닌 ‘남성의 소유물’로 보는 한국사회의 차별 의식과 가부장적 사고라고 지적한다.

이화씨는 한국사회에 비교적 잘 적응한 ‘베테랑’ 결혼이주여성이지만 이방인 취급을 피할 수가 없다. 엄마들의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모든 곳이‘차별의 네트워크’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수없이 실감한다. 서울교통공사에 취업했을 때는 민원인이 “네가 내 아들 일자리를 빼앗았다”며 달려든 기억도 있다. 이화씨는 “저도 한국인인데요”라고 항의했지만 그때 느낀 불쾌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업무나 교육을 받을 능력을 입증해도 일단 외국 출신이니 ‘다문화 가정’을 위한 코스를 밟으라며 한국인과 동등한 자격을 주는 것에 손사래부터 치는 경우도 있었다.

가족문제에 있어서도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2012년부터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를 한집에서 모시고 있는 이화씨 부부는 가족이 조만간 생이별하게 될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여 있다. 법무부가 둘째 아이가 만 7세가 됐다는 이유로 보육할 사람이 따로 있을 필요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친정엄마의 체류기간 연장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63세인 친정엄마는 9월이면 중국으로 돌아가 혼자 생활해야 한다. 방문동거(F-1)비자가 만료되면 그 이후에 다시 한국 체류 자격을 얻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이화씨는 저혈압으로 인한 실신ㆍ백내장 등으로 곳곳이 아픈 어머니를 멀리 보낼 수 없어 남편과 대책을 상의했지만, 이화씨가 잠시나마 중국으로 함께 돌아가는 방법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직계가족, 특히 부모의 경우에는 한국에 계속 머무는 것을 허락해주기를 원하는 결혼이주여성이 적지 않다. ‘한 자녀 정책’을 오래 유지해온 중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은 부모 중 한 명이 사망하면 생존한 부모를 어떻게 모셔야 할지가 큰 고민이다. 이화씨는 “저와 남편이 시어머니를 봉양하듯이 친정 엄마에게 효도하겠다는 게 잘못인가요”라며 한국인의 배우자로 외국 여성들을 데려왔으면 그들의 가족도 존중해달라고 이화씨는 하소연했다.

15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열린 '이주여성의 권리 보장과 인종차별을 포괄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결혼중개업체부터 편견 싹 틔워

결혼이주여성들은 무엇보다도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한 국제결혼이 편견을 싹 틔우는 토양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남성이 일정한 비용을 내고 해외 여성을 물건처럼 고르는 방식은 여성을 ‘소유물’로 여기도록 하는 근인이라는 설명이다. 일부 업체는 홈페이지에 외모를 강조한 여성 사진, 어린 여성을 만날 수 있다는 문구를 내거는 등 노골적으로 매매혼 조장 의도를 드러내기도 한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이제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후배 결혼이민여성들을 결혼이민여성 정춘홍(42)씨는 정도가 지나친 업체가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전부 문을 닫아야 해.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온 여성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이래. 방에 한국남자가 딱 앉아 있으면 여성들이 쫙 들어와. 마음에 안 들면 업체가 다른 여성들을 또 찾아줘. 이렇게 여성을 골라서 3일 만에 결혼식까지 한다고. 남성이 적지 않은 돈을 들였는데 한국에 돌아오면 어떻게 대하겠어?”

다만 전문가들은 결혼이민여성과의 결혼에서 생긴 문제를 모두‘매매혼’탓으로만 보는 건 편견이라고 지적했다. 재력과 외모 등 조건을 따졌다고 해서 서로에게 애정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결혼했다거나, 애정이 생기지 못하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결혼에서 애정이 전제 조건 또는 절대적 조건인 것도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 보장을 위한 실태조사’(2017년)를 작성한 김은정 한양여대 사회복지보육과 교수는 “한국인끼리의 결혼도 사랑과 애정만이 모든 것은 아니다”라면서 “서로 뜻이 맞아 결혼을 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존중하고 대우를 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제도 자체에 매매혼적 성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별 부부들이 서로를 위하고 아낀다면 꼭 매매혼 관계로만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중개업체를 통해 10년 전 한국인과 결혼한 베트남 출신 김하영(38ㆍ귀화명)씨는 매매혼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말고 두 사람이 만나 좋은 가정을 이루는 방법을 찾는 데 사회와 정부가 도움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에 와서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상대방 남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부터 제공받아야 한다고 김씨는 말했다. 그는 “많은 결혼이주여성이 남성의 결혼 경험, 주변 환경 등에 대해 거짓이거나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은 상태로 한국에 온다”면서 친동생의 사연을 들려줬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하면 서울밖에 몰라요. 서울 근처라고 말하면 알아도 다른 지역 말하면 어딘지 모르죠. 여동생 역시 한국에 결혼이민을 왔었지만 남자가 웬 섬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욕하고 내쫓고 해서 결국 여성긴급전화 1366번에 신고해서 탈출했어요.”

결혼 전 결혼이주여성과 한국남성이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게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한국으로 외국인 여성을 초청해 결혼하기를 원하는 남성이 있다면, 정부가 배우자의 문화에 대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하는 일은 그래서 반드시 필요하다.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장은 “베트남, 중국, 필리핀 등 저마다 문화가 다른데 그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여성부터 초청해 살기 시작하니 남편 본인, 시부모 등과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라면서 “결혼이주여성과 결혼을 원하는 남성에게 상대국의 문화교육 및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강사도 결혼이주여성이 직접 맡으면 효과가 클 것”이라고 제안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결혼 당사자들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에 필요하다고 결혼이주여성들은 입을 모은다. 김하영씨는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에 와서 무슨 특혜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한국에 와서 아기 낳고, 잘 키우고, 일하면서 사는 것을 바란다”면서 “한국인과 똑같이 대해주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이화씨는 자신 역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지역 공동체에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요즘은 자녀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주민센터에서는 중국어를 가르친다. 지역 의용소방대 활동에도 열심이다. 두 아들의 학교 친구들과 그 부모들이 지금은 결혼이주여성에 대해 어색해하고 가까이 다가올 용기를 내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먼저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력 끝에 언젠가는 이방인이 아닌 함께 같은 생활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한국사회에 받아들여 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이화씨는 믿고 있다. “제 꿈요? 그저 저희 아기 열심히 키우고 부모님 모시고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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