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스키 발레단의 영향을 많이 받은 유니버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새드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보름달이 떠 있는 호숫가에서 아름다운 군무를 선사하는 순백의 백조들은 발레 ‘백조의 호수’를 떠올릴 때 연상되는 장면이다.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첫 발레 음악 도전작이기도 한 ‘백조의 호수’ 선율은 발레의 대명사처럼 귀에 익숙하다. 사악한 마법사 로트바르트의 저주에 걸려 낮에는 백조가 됐다가 밤에는 사람이 되는 오데트 공주와 지그프리트 왕자의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은 초연 후 140여년간 수 많은 버전으로 변주돼 왔다. 32회 푸에테(연속회전)을 선보이고 백조의 날갯짓을 끊임없이 표현하는 것은 물론 빛과 어둠으로 대비되는 1인 2역의 섬세한 연기까지 필요해 ‘백조’는 발레리나들에게 꿈의 역할이기도 하다.

1877년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됐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백조의 호수’는 고전 발레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리우스 프티파와 그의 조수 레프 이바노프가 1895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한 버전이다. 당대 최고 발레리나였던 이탈리아의 피에리나 레냐니가 오데트와 오딜(흑조)을 동시에 맡으면서 백조 역할이 1인 2역으로 굳어졌다.

극중 지그프리트의 딸 오딜(흑조)은 왕자를 유혹한다. 발레리나는 오데트와 오딜의 1인 2역을 소화해야 한다. 국립발레단 제공

올해 국내에서는 각기 다른 결말을 지닌 ‘백조의 호수’ 4편이 공연된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은 지난 4월 국내 공연에 이어 지난달 프랑스 파리의 팔레 데 콩그레에 초청돼 순회 공연을 마쳤다. 다음달 28일부터 9월 1일까지 국립발레단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발레시어터(SPBT)가 각각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 10월 9~20일에는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현대무용으로 재해석된 영국 안무가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가 무대에 오른다.

대다수의 무용단은 프티파와 이바노프의 버전을 조금씩 수정해 가며 무대에 올린다. 국립발레단은 유리 그리가로비치 전 볼쇼이 발레단 예술감독이 재안무한 버전이고, UBC는 올레그 바노그라노프 전 마린스키 발레단 예술감독이 재안무한 버전을 토대로 한다. 국립발레단 버전의 가장 큰 특징은 로트바르트 역할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평소 인물의 심리를 강조하는 그리가로비치의 안무 스타일이 적용됐다. 또 헝가리와 스페인 등의 전통 춤을 선보이는 디베르티스망(발레 줄거리와는 상관 없이 추는 무용)에서 무용수들이 토슈즈를 신는 것도 고전 발레의 특징을 중시하는 그리가로비치의 스타일이 부각된 부분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올해 ‘백조의 호수’의 새로운 결말을 선보였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이렇듯 작품 해석과 안무가 조금씩 다른데 국립발레단과 UBC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결말이다. 국립발레단의 공연은 오데트와 지그프리트가 로트바르트를 물리치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그리가로비치가 국립발레단에 해피엔딩을 추천해서다. 반면 UBC는 2016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새드엔딩이었다. 저주를 풀지 못한 오데트는 인간이 되지 못하고 지그프리트는 죽음을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올해는 새 결말을 고안해냈다. 오데트의 희생 덕분에 로트바르트를 물리치고 지그프리트는 목숨을 구하지만, 지그프리트는 사랑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무너지는 성 안으로 뛰어들어 오데트와 함께 죽음을 맞는다. 대개 호수에 뛰어드는 결말에서 변주된 것이다.

발레단이 새로운 결말을 만들어 내거나 작품을 변주하는 이유는 관객에게 새로움을 주기 위해서다. UBC 관계자는 “’백조의 호수’는 2년에 한 번꼴로 관객들을 만나기 때문에 매번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안무나 무대 소품, 의상 등을 조금씩 새롭게 시도한다”며 “그 시대의 관객 분위기나 사회분위기를 반영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최초로 내한하는 SPBT의 작품은 UBC와 유사하다. 내한 공연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SPBT 수석무용수 이리나 코레스니코바는 “마린스키 발레단의 콘스탄틴 세르게예프가 재안무한 버전을 그대로 무대에 올려 마린스키 극장의 전통을 유지하려 한다”고 소개했다. 다만 SPBT는 지그프리트가 로트바르트를 물리치는 해피엔딩이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에는 카리스마와 자유로 표상되는 남자 백조들이 등장한다. LG아트센터 제공

영국의 안무가 매튜 본은 1995년 깃털 바지를 입은 남자 백조들이 군무를 추는 ‘백조의 호수’를 선보였다. 줄거리도 현대 영국의 왕실로 옮겨 왔다. 유약한 왕자가 자신이 갖지 못한 강인한 카리스마를 지닌 환상 속의 백조를 만나며 펼쳐지는 이야기로 무대 위 백조들은 날개로 상대방을 위협할 정도로 힘이 넘친다. 이번 내한 공연은 9년 만이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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