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전쟁이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최대 수혜국 베트남이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 수지 개선 노력에 나서는가 하면 언론에도 관련 지침을 내려 ‘표정 관리’를 주문했다. 미국이 중국 제품의 대미 수출 우회로로 베트남을 지목한 상황에서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관세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은 베트남의 최대 수출국으로, 중국과 한국 일본과의 무역에서 발생한 적자를 베트남은 미국 시장에서 만회하고 있다.
15일 베트남뉴스에 따르면 응우옌 쑤언 푹 총리는 주말이던 지난 13일 고위 지도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관계 부처에 “핵심 교역국들과 ‘조화로운’ 무역 관계를 보장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것”을 지시했다.
매체는 ‘핵심 교역국’에 대해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핵심 파트너들과의 협력 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오갔다”고 전했다. 베트남의 핵심 수출국은 미국을 필두로 중국, 한국, 일본, 독일 순이며, 수입국은 중국을 선두로 한국, 일본, 대만, 미국 순이다.
특히 푹 총리는 “이들과의 무역협력 확대야말로 베트남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고 거시경제의 안정을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베트남은 미국과의 무역수지 흑자 폭을 줄이기 위해 보잉사의 비행기 등 더 많은 미국 제품을 수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푹 총리는 또 외국인투자자들이 보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지원 확대를 주문하면서 “환경 친화적인 기술을 사용하는 투자자들을 배려하라”고 지시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의 환경 오염이 사회 문제화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분야에서 앞서가는 미국 기업들이 혜택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푹 총리가 지난주 관련 당국에 원산지 표시 위반 등의 문제를 철저하게 단속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나온 것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베트남에서 수입된 제품들이 중국산으로 둔갑된 것들이며 ‘베트남이 중국보다 더 나쁘다’라며 맹공을 퍼부은 바 있다.
이와 함께 최근 베트남 정부는 관련 언론 보도 지침도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베트남 정부 관계자는 “각 언론사에 미중 무역전쟁 관련 보도 자제 지침이 하달됐다”라며 “특히 ‘베트남의 대미 수출 증가’와 같은 기사는 쓸 수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현재 대부분의 매체에서 미중 무역전쟁 관련 기사가 크게 줄었으며,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대미 수출 증가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5월말 기준 베트남의 대미 교역 흑자 규모는 전년 대비 23% 증가한 216억달러를 기록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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