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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맥 끊겨가는 무형문화재… 전승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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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맥 끊겨가는 무형문화재… 전승자가 없다

입력
2019.07.16 04:40
수정
2019.07.16 09:3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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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이후 종목 수는 33% 늘었지만 보유자 수는 25%나 급감

전통문화 수요 줄어 생업 힘들어… 전승취약 종목도 24% 달해

국가무형문화재 탕건장 김혜정 선생이 탕건을 만들고 있다. 탕건은 남자들이 갓을 쓸 때 받쳐 쓰는 모자의 일종으로 사모(紗帽)나 갓 대신 평상시 집안에서 쓴다. 주로 말총이나 쇠꼬리털로 만든다. 문화재청 제공
국가무형문화재 탕건장 김혜정 선생이 탕건을 만들고 있다. 탕건은 남자들이 갓을 쓸 때 받쳐 쓰는 모자의 일종으로 사모(紗帽)나 갓 대신 평상시 집안에서 쓴다. 주로 말총이나 쇠꼬리털로 만든다. 문화재청 제공

2009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김혜정(73) 선생은 조선시대 남성들이 머리카락을 감싸기 위해 썼던 탕건을 만드는 유일한 탕건장(宕巾匠) 보유자다. 말총이나 쇠꼬리털을 바늘로 일일이 기워 틀을 짜는 세밀한 작업이기에 탕건 하나를 만드는 데 3개월이 걸릴 정도로 기술이 요구된다. 김 선생은 7살 때 어머니 김공춘(100ㆍ현재 명예보유자)씨를 따라 탕건에 입문해 70년 가까이 업을 이어오고 있다.

김 선생은 최근 고민이 많다. 자신의 대를 이을 전승자가 좀체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다. 정부 인증을 받은 전수교육조교(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사를 통해 인증된 교육생)는 한 명도 없고, 김씨의 두 딸만이 회사생활과 병행하며 이수교육을 받고 있다. 김 선생은 “매년 전수교육을 하지만 본격적으로 탕건을 배우겠다는 수강생들은 사라진 지 오래”라며 “5, 6년에 탕건 1개가 팔릴까 말까 할 정도로 수요가 적으니, 강요도 할 수 없고 안타까울 노릇”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K팝 등 한국 문화가 세계 무대로 뻗어나가고 있지만 정작 전통 문화에 대한 국내 관심과 전승에 대한 공감대는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최근 청와대로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을 초청해 격려하고 정부 역시 보유자와 교육생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지만 후계 기반을 넓히는 데는 역부족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윤도장 김종대 선생이 지남침을 제작하는 모습. 윤도장의 보유자는 김 선생 1명에 불과하다, 전수교육조교도 1명뿐이다. 문화재청 제공
국가무형문화재 윤도장 김종대 선생이 지남침을 제작하는 모습. 윤도장의 보유자는 김 선생 1명에 불과하다, 전수교육조교도 1명뿐이다. 문화재청 제공
[저작권 한국일보]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송정근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규모는 2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역대 보유자 수가 가장 많던 2002년(220명)에 비해 올해 6월 말 기준 보유자(166명)는 24.5%나 감소했다. 특히 보유자의 57.7%가 70세 이상(2017년 기준)인 탓에 수년 안에 보유자 규모가 급감해 보유자가 없는 종목이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실제 베를 짜는 베틀의 한 부분인 바디를 제작하는 바디장과, 그림에 종이, 비단 등을 붙여 족자와 병풍 등을 만드는 배첩장(褙貼匠)은 각각 2006년과 2014년 마지막 보유자가 별세한 후 수 년 동안 보유자가 없는 종목으로 남아있다.

보유자는 급속히 줄어든 반면 종목 수는 2002년 108개에서 144개로 33.3%나 늘었다. 무형문화재 종목만 늘고, 실제 보유자는 줄어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종목 상당수가 보유자의 기술을 이어 받을만한 후계가 빈약하다는 점이다. 144개 종목 가운데 전수교육조교가 없거나 이수자 배출이 더뎌 ‘전승취약종목’으로 구분된 종목이 탕건장 등 35개(24.3%)에 달한다. 전체 종목의 전수교육조교는 2001년 308명이었다가 현재 280명까지 줄어든 실정이다.

그림에 종이, 비단 등을 붙여 족자, 병풍 등을 만드는 배첩장(褙貼匠)은 국가무형문화재다. 2014년 보유자 김표영 선생이 별세한 후 배첩장은 보유자도, 전수교육조교도 없는 종목이 됐다. 문화재청 제공
그림에 종이, 비단 등을 붙여 족자, 병풍 등을 만드는 배첩장(褙貼匠)은 국가무형문화재다. 2014년 보유자 김표영 선생이 별세한 후 배첩장은 보유자도, 전수교육조교도 없는 종목이 됐다. 문화재청 제공
[저작권 한국일보]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송정근 기자

보유자들은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이 어려운 주된 이유로 전통 문화에 대한 수요가 매년 급감하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특히 대다수 종목이 생계로 삼기는 힘든 기술이라 전통 계승에 매진하기가 어렵다. 정부가 보유자의 전수교육 의무에 대한 지원금으로 월 135만원(취약종목은 연간 1회 471만6,000원 추가 지급)을 지급하고, 전수교육조교에도 월 68만원(취약종목은 연간 1회 313만2,000원 추가 지급)을 보장하는데도 교육생 규모가 늘지 않는 이유다. 전승교육조교 1명을 둔 한 보유자는 “공연을 나가 돈을 벌 수 있는 무용이나 음악 등 예능 종목과 달리 공예 종목은 시장 자체가 작은 탓에 물품 팔기가 상당히 어렵다”며 “이 사정을 모두가 알기에 정식으로 기술을 배우라고 설득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대중에 국가무형문화재의 면모를 제대로 알려 시장을 키우는 중장기 정책도 부족하다. 정부는 전북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매년 무형문화재 보유자 작품전을 열고 전국 각지에 전수교육관 153개를 마련하는 등 홍보 기반을 마련하고 있으나 이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무형문화재 위원인 신탁근 온양민속박물관 고문은 “일본은 유명 작가의 명화를 앞다퉈 소유하려고 하듯, 국가무형문화재의 작품을 소유하거나 관람하는 데 큰 가치를 둔다”며 “지원금 확충도 중요하지만 각 종목의 가치를 대대적으로 알리고 이수자뿐 아니라 일반에 전승의 필요성을 교육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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