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프가 "무릎반사적 리버럴리즘"의 대표 사례로 언급했던 오벌린대학 앞 깁슨 베이커리(Gibson’s Bakery). 뉴욕타임즈 제공

정치권의 극한 대립과 막말이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와 내로남불식 행태에 신물이 난 국민들은 이제 정치권에 별반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정치권은 그렇다 치자. 문제는 공동체의 공기(公器)인 언론이나 지식인들까지도 갈수록 진영 논리에 얽매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자신의 이념적 지향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이들이 진영 논리에 매몰돼 자기 편이 잘못한 것은 “무조건” 두둔 내지 외면하고, 상대편이 잘한 것은 “무조건” 흠집을 내려는 것은 결코 옳은 태도가 아니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는 미국은 진보와 보수 진영 간 전운이 벌써부터 고조되고 있다. 진보 진영의 대표적 신문인 뉴욕타임스는 반(反) 트럼프 전선의 최선봉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와중에 뉴욕타임스에 실린 최근의 한 칼럼은 매우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미국 진보 진영의 대표적 정치평론가다. 그는 2001년부터 뉴욕타임스에 정기 칼럼을 기고해 오면서 수많은 고정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저널리스트다. 그런 그가 6월 말 리버럴리즘의 대의(大義)를 훼손하는 “무릎반사적 리버럴리즘(knee-jerk liberalism)”을 중단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올린 것이다. 작심하고 자기편을 향해 쓴소리를 날린 것이다.

‘knee-jerk’라는 형용사는 무릎반사에서 유래했다. 고무망치로 무릎 아래를 치면 무릎이 자동적으로 들린다. 이것이 무릎반사다.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무조건 반사적으로 판에 박힌 상투적인 반응을 보일 때 사용되는 은유적 표현이다.

크리스토프는 “무릎반사적 리버럴리즘”의 전형적 사례로 2016년 오하이오주 소재 오벌린대학에서 발생했던 사건을 언급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오벌린대학 앞에 깁슨 베이커리(Gibson’s Bakery)라는 식료품가게에서 포도주를 몰래 훔쳐 도망가려는 흑인 대학생을 백인 점원이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그다음 날부터 대학생 수백 명이 이 가게 앞에 진을 치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곳은 인종주의자 가게입니다”라는 전단을 배포하면서 불매 운동을 전개하였다. 대학 당국도 학생들의 주장에 동조하여 식자재 구입 거래를 전면 중단했다. 급기야 깁슨 베이커리는 오벌린대학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대학 측에 무려 4,400만달러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크리스토프는 이 사건의 본질은 절도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인데, 오벌린대학 측이 정작 진실은 외면한 채 마치 인종문제가 본질인 것처럼 진영 논리에 입각해 무릎반사적으로 반응한 것은 리버럴리즘의 대의와 양심을 저버린 잘못된 처사라고 통렬히 비판했다.

그의 선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자신의 수많은 열혈 팬들을 잃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해야 하는 진보 진영의 선거전략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이적행위(利敵行爲)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에 대한 재판에서 이렇게 변론했다. “저는 신(神)이 이 나라에 달라붙게 한 자입니다. 마치 몸집이 크고 혈통은 좋지만 그 큰 몸집 때문에 좀 둔한 말(馬)을 깨어 있게 하려면 등에(gadfly)가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신은 저를 이 등에처럼 이 나라에 달라붙어 있게 하여, 여러분을 깨우치고, 온종일 어디나 따라가서 곁에 달라붙어 설득하고 비판하기를 그치지 않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에 소크라테스, 크리스토프와 같은 지혜롭고 양심적인 등에들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일 것이다.

김희관 변호사ㆍ전 법무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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