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맞춘 듯 안 맞춘 듯 ‘시밀러룩’ 
평소 ‘시밀러룩’ 즐겨 입는 커플 박영준(왼쪽)씨와 심민씨. 분홍색으로 색깔을 통일하되 소재로 변주를 줬다. 서재훈 기자

“굳이 맞춰 입으려고 하지 않아도 이미 닮아 있어요.”

사랑하면 닮는다는데, 그래서 패션에 관심 많은 박영준(26)씨와 심민(24)씨는 제일 먼저 옷 입는 스타일부터 닮아버렸다. 비슷하게 맞춰 입지만 똑같은 것은 아닌 ‘시밀러룩(Similar Look)’, 박씨와 심씨 애정의 지표다.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두 사람은 유튜브 채널 ‘민감커플’에서 다양한 시밀러룩 패션을 선보이며 2만2,000명 구독자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박씨와 심씨를 만나 시밀러룩 잘 입는 비법을 어깨너머로 배워봤다.

이 커플의 시밀러룩 콘셉트는 ‘분홍’. 박씨는 거친 질감의 면 소재로 채도(선명함)가 낮은 분홍색 바지와, 무늬가 없는 베이지색 면 티셔츠를 어울려 입었다. 심씨도 상의와 하의를 모두 분홍색 계열로 통일했지만 소재로 차별화했다. 심씨는 타이다이(Tie-dye) 기법으로 염색된 분홍 티셔츠를 선택했다. 타이다이는 옷감을 묶거나 꿰매어 군데군데만 염색되도록 하는 염색법으로 ‘홀치기염’이라고도 한다. 자연스러운 색감 덕에 똑같지 않으면서 어울리는 색을 배치할 때 안성맞춤이라 시밀러룩 연출 단골 메뉴다. 또 치마도 박씨의 분홍, 베이지와 비슷한 색을 택했다. 색이 비슷한 대신 나풀나풀한 벨벳 소재로 변주를 줬다.

척 봐도 연인 사이 같은데 숨은 장치가 하나 더 있다. 심씨가 멘 스웨이드 소재 초록색 가방, 그리고 박씨가 바지 왼쪽에 매단 초록색 열쇠고리다. 심씨는 “옷으로 전체적인 통일감을 줬지만 초록색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줬다”며 웃었다.

너무 뭔가를 맞추려 고민고민할 필요는 없다. 심씨는 “때에 따라 옷은 원하는 대로 각자 입고 모자, 신발 등 포인트 하나씩만 맞춰도 멋스러운 시밀러룩이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맞추는 건 색깔만이 아니다. 박씨는 “원단이나 분위기, 옷이 헐렁하냐 딱 붙느냐 등의 느낌만으로도 시밀러룩을 연출할 수 있다”면서 “과거 똑같은 옷을 크기만 다르게 맞춰 입었던 커플룩(Couple Look)의 변형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작업실에서 시밀러룩을 코디해보고 있는 박영준씨와 심민씨. 서재훈 기자
 
 ◇ 시밀러룩 입고 ‘인생샷’ 건져볼까? 

시밀러룩은 연인들만 하는 건 아니다. 교환학생으로 중국 시안에 갔던 대학생 이경민(22)씨. 지난 5월 시안에서 동고동락한 교환학생 친구들과 중국 리장 여행을 준비하면서 특별한 아이디어를 냈다. 7명이니까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 탕좡(唐装)을 입어보자 했다. 탕좡이 한족 전통 의상인지라 강렬한 원색을 구하긴 어려웠다. 중국에서 가장 크다는 인터넷 쇼핑몰까지 샅샅이 뒤져 그래도 비슷한 색의 탕좡들을 구했다.

사다리타기로 개인별 색깔을 정했고, 포인트를 찍어줄 선글라스까지 더했다. 이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리장 여행 일정과 함께 공유한 10장의 사진은 여행 전문 계정 ‘여행에 미치다’에도 소개됐고, 1만7,800여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무엇보다 여행의 추억, 그 자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씨는 “현지인들까지 멋지고 예쁘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혼자 입고 다닐 용기는 안 났는데, 여럿이서 맞춰 입고 다니니 더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경민씨가 지난 5월 친구들과 중국 리장을 찾았을 때 맞춰 입은 무지개 색깔의 탕좡. 전통 의상이라 원색 그대로의 무지개는 아니었음에도, 묘하게 재미있는 조합이다. 이경민씨 제공

이소정(25)씨도 ‘무지개파’였다. 10년지기 친구들 6명이 부산여행을 가면서 무지개색 옷을 맞춰 입었다. 6명이라 남색 하나 빠졌고 전통 복장도 아니지만, 원색 옷을 구하느라 고생깨나 했다. 하지만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어쩌면 평범했던 여행으로 끝날 뻔 했는데 사실상 ‘1일 연예인 체험’을 하고 왔단다. 이씨는 “인스타그램에 여행 사진을 게시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친구들을 해시태그(단어 앞에 ‘#’을 붙여 특정 정보가 검색되도록 하는 것)하면서 ‘우리도 이렇게 하자’, ‘맞춰 입고 여행 가자’ 등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톤 온 톤’ ‘톤 인 톤’ … 복잡한 시밀러룩 공식 

시밀러룩, 이번 휴가 때 좀 더 손쉽게 도전해볼 수 있을까.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에 관련 사진이 넘쳐나기 때문에 참고해볼 만한 정보는 충분한 편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이경민씨나 이소정씨처럼 똑같은 옷을 색깔만 달리해 입는 방법이다. 거꾸로 색깔 하나만 정하고 옷은 각자 알아서 입는 이른바 ‘깔맞춤’ 방법도 있다. 패션 유튜브 크리에이터 ‘페어리 티나’ 안형인(27)씨가 즐겨하는 것도 이 방법이다. 안씨는 “곧 친구들과 제주도로 떠나는데 여행 중 하루는 흰색 옷으로 통일할 것”이라며 “색깔은 정해졌으니 그 범위 내에서 자신만의 개성이나 스타일을 살릴 수도 있고, 왕골 가방 같은 걸로 포인트도 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패션 유튜버 안형인(왼쪽)씨가 체크 무늬와 베이지 색을 기본으로 친구와 맞춰 입은 가을 시밀러룩. 안형인씨 제공

같은 계통 색깔에서 명도와 채도를 달리하는 ‘톤 온 톤(tone on tone)’ 기법, 다른 계통 색깔이지만 명도와 채도를 맞추는 ‘톤 인 톤(tone in tone)’도 흔히 보이는 시밀러룩 공식이다. 빨간색 티셔츠와 자주색 바지, 분홍색 가방을 착용했다면 톤 온 톤이고, 비슷한 밝기로 붉은 계열의 코트와 녹색 계열의 원피스를 입었다면 톤 인 톤이다.

이 밖에 체크 등 무늬를 맞추거나, 같은 색깔이나 무늬의 옷을 서로 상ㆍ하의를 바꿔 입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결국 시밀러룩은 서로의 분위기가 어울려야 하는 게 핵심이다. 심민씨는 “시밀러룩을 자연스럽게 연출하고 싶다면 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무드(분위기)’가 비슷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놀이 문화가 된 시밀러룩 

시밀러룩 열풍에 날개를 달아준 건 SNS다. 인스타그램에서 시밀러룩을 찾으면 52만개가 넘는 사진과 동영상이 등장한다. 시밀러룩 코디, 시밀러룩 추천, 시밀러룩 도전 등 비슷한 검색어만도 30개 가까이 나타난다.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 소장은 “1990년대 유행했던 커플룩이 사라지고 시밀러룩이 등장한 건 옷으로 상대방과 유대 관계를 확인하려는 심리가 여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친구, 연인 등 특별한 사람과 특별한 곳에서 가서 특별한 ‘인증샷’을 남기는 것 또한 서로의 유대감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잠옷을 맞춰 입고 편하게 노는 ‘파자마 파티’, 만우절인 4월 1일 대학 신입생들이 모교의 교복을 입고 만나는 ‘교복데이’도 그렇다. 미국에도 이런 전통은 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 등장인물들처럼 20세기 초 의상을 입고 만나는 ‘개츠비 파티’, 상원의원들이 남부지방에서 생산되는 면직물 ‘시어서커(seersucker)’로 지은 양복을 맞춰 입는 ‘시어서커 목요일’ 행사 같은 게 있다.

다만 SNS는 이 같은 놀이에 파급력과 영향력을 더해준다. 박세진 패션칼럼니스트는 “시밀러룩은 인류의 오래된 놀이지만, 사진ㆍ동영상으로 결과물이 명확하게 남고 반응과 소통이 오가는 SNS는 이 놀이를 더 확장시킨다”고 말했다.

자신을 남들 눈에 적극적으로 노출시키는 문화도 시밀러룩 유행 이유 중 하나다. 당일 맞춰 입은 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오게 찍어 올리는 ‘오늘의 의상(Outfit Of The DayㆍOOTD)’ 해시태그는 인스타그램에 2억개가 넘는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는 “르네상스 시대에도 수채화를 통해 자신의 패션을 타인에게 보여 주고 싶어했다”면서 “다만 이제는 패션을 공표하고 이를 통해 타인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수단이 ‘민주화’되면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분출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때문에 시밀러룩 문화가 일시적 놀이, 유행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큐레이터는 “과거에는 남성복, 여성복, 아동복의 경계가 뚜렷했지만, 이제는 이 같은 구분이 무너지고 성중립적인 패션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등장했다”면서 “정서적으로 유대를 맺고자 하는 사람과 성별 구분 없이 옷을 어울려 입는 사조는 더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진주 소장도 “시밀러룩 유행 자체가 우리나라에도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증거”라면서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 패션도 점점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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