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언론, 대럭 전 주미 영국대사 메모 추가 보도… 경찰, 문건 유출 용의자 신원 확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서툴고 무능하며 불안정하다”고 혹평한 외교 전문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 최근 사임한 킴 대럭 전 주미 영국대사의 또 다른 ‘트럼프 대통령 비판 문건’이 추가로 공개됐다.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 합의 탈퇴 결정에 대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괴롭히려는 것(to spite Obama)’이라고 설명했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좀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폄하를 당했다고 느낄 법하다. 대럭 전 대사의 사의 표명으로 봉합 국면에 들어가는 듯했던 영국 외교 문건 유출 사태의 파문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13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현지 일간 데일리 메일의 일요판 ‘메일 온 선데이’는 대럭 전 대사가 지난해 5월쯤 작성해 보리스 존슨 당시 외무장관에게 보고한 외교 메모를 추가 보도했다. 존슨 전 장관이 미국을 방문,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 핵 합의 유지를 촉구하고 귀국한 이후에 쓰여진 문건이었다. 앞서 데일리 메일은 대럭 전 대사가 2017년부터 최근까지 본국에 보낸 이메일 내부 보고서를 입수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를 혹평한 부분을 지난 6일 보도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격하게 반발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대럭 전 대사는 나흘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럭 전 대사는 새로 공개된 문서에서 미국의 이란 핵 합의 탈퇴를 “외교적인 반달리즘(vandalismㆍ공공기물 훼손)”이라고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을 괴롭히고자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고도 했다. 그는 미 대통령 참모들의 분열, 핵 합의 탈퇴 이후 상황에 대한 일상적인 전략 부재를 지적하면서 “이는 백악관의 역설을 보여주며, 트럼프 대통령 이외의 모든 이들에 대해 당신이 이례적인 접근권을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럭 전 대사는 “실질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외교적인 반달리즘 행동을 하려 하는데, 이념적ㆍ성격적인 이유로 보인다”며 “그것(이란 핵 합의)은 오바마의 합의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오바마 지우기’에 집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 탓이라는 얘기다. 그는 또, “게다가 그들(미 행정부)은 향후 어떤 대책도 분명히 하지 못한다. 오늘 아침 미 국무부는 유럽 또는 다른 지역의 파트너 및 동맹에 대한 접촉 계획이 없다는 걸 시사했다”고도 덧붙였다.
이번 추가 보도는 런던 경찰국이 언론에 ‘유출 문건 보도는 공직자 비밀 엄수법(Official Secrets Act) 위반’이라고 경고한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언론 자유 침해’라는 새로운 논란도 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경찰은 대럭 전 대사의 메모 유출 사건을 수사해 이미 용의자 신원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부 소식통은 “과거 데이터 파일에 접근 가능한 자의 소행”이라 말했다고 현지 매체 선데이 타임스가 전했다.
그러나 메일 온 선데이 측은 “대럭 전 대사의 메모는 공공의 이익에 관계된 것이고, 영국이 미국의 이란 핵 합의 탈퇴를 막으려 했다는 중요한 정보를 알린 것”이라며 보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영국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존슨 전 장관도 “문건 유출 용의자를 기소하는 건 옳지만, 경찰이 언론을 표적으로 삼는 건 옳지 않다”고 했고, 그의 경쟁 후보인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 역시 “언론의 보도 권리를 끝까지 보호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경찰의 엄포에 반발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