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귀국 직후 긴급 사장단 회의… 3개 핵심소재 긴급물량 확보한 듯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와 관련해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비상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수출 규제 해법을 찾아보기 위해 7~12일 엿새간 머물렀던 이 부회장이 일본에서 돌아오자마자 긴급 회의를 열었다는 점에서 생각 이상으로 양국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이 이번에 수출 제재 대상으로 지목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포토레지스트(감광액) 등 3개 핵심 소재에 대한 추가 물량 확보에 성공해 이날 회의에서 공유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생산 중단’이란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당장 급한 불을 껐다는 건데, 대체적으로는 일본 현지 상황을 직접 점검한 이 부회장이 거꾸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확대 움직임을 감지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좀 더 우세하다.
14일 재계 등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13일 오후 삼성전자 국내 한 사업장에서 일본 출장 경과와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회의를 가졌다. 회의에는 김기남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회장과 진교영 메모리사업부장(사장), 강인엽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등 일본의 이번 수출 제재 품목에 관련된 사장단이 대부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는 추가 물량 확보 방안과 일본 규제 장기화 및 규제 품목 확대 시 대비책이 주로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까지 추가 확보된 물량 규모나 공급처, 수입 경로 등이 확인되지는 않지만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소재 재고가 다 소진되더라도 당장 생산 차질을 막을 수 있는 물량 정도는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사태가 터진 직후부터 백방으로 물량 확보에 주력했던 구매팀들이 최근 성과를 올렸고 이 부회장 귀국 시점과 맞아 떨어져 긴급 사장단 회의 때 공유된 것”이라며 “일본 소재 기업의 해외 공장 물량을 우회적으로 들여오는 방안, 새로운 거래선 추가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재고를 일부 추가 확보했고 내부적으로 ‘숨통 트인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소재를 확보하더라도 생산 테스트, 계약 등 남은 과정이 많아 빠듯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삼성 내부에서는 물량 추가 확보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도 이 부회장은 이번 사태를 장기적 시각으로 대비할 것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기 현안 대체에만 급급하지 말고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의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거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한편, 흔들리지 않고 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등의 당부가 전해졌는데, 현재 제재 대상인 반도체ㆍ디스플레이 핵심 소재뿐 아니라 규제 확대 시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사업부문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라는 주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당장 제재 대상으로 들어가 있는 부품 문제뿐 아니라 향후 수출 절차에 대한 우대조치 대상국(화이트국가)에서 제외될 경우 TV, 휴대폰 등 제품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 있어 다양한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조만간 이 부회장이 정부 고위급 관료와 비공개 회동을 가질 가능성도 제기한다. 현대자동차, SK, LG 등 대기업총수들이 참석했던 10일 청와대 간담회에 이 부회장은 출장을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김상조 정책실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을 만나 일본 출장 결과물을 공유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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