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뉴욕 대정전 42주년을 맞은 13일(현지시간), 또다시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지하철이 멈춰서는 등 주말 저녁 뉴욕 시민과 관광객들은 불편을 겪었다. 정전은 약 4시간 만에 완전 해소됐지만, 공교로운 시점에 발생한 이번 정전 사태에 노후된 뉴욕시 인프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뉴욕 소방당국은 이날 변전소 화재가 대규모 정전을 유발했다고 발표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47분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웨스트 64번가와 웨스트엔드애비뉴에서 변압기 화재가 시작됐다. 인근 건물에선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도 다수 목격자에 의해 포착됐다. 이어 오후 8시쯤에는 인근 미드타운의 록펠러센터 빌딩 상당 부분에 전기가 끊겼다. 어퍼 웨스트사이드 지역에도 정전이 번졌다. 해당 지역에는 고급 주택가와 상점이 밀집돼 있다.
지하철 운행도 중단됐다. 뉴욕광역교통국(MTA)은 “정전 탓에 모든 지하철 운행 계통에 영향이 생겼다”고 밝혔다. 신호등도 꺼져 교차로마다 혼란이 빚어졌다. 맨해튼 곳곳 고층 빌딩에서도 승강기가 멈춰 내부에 승객이 고립됐다. 이번 정전으로 약 7만2,000명이 최소 3시간 넘도록 어둠 속에 있었다고 NYT가 보도했다.
맨해튼의 상징인 타임스스퀘어의 일부 전광판도 작동이 중단됐다. 공연장이 밀집돼 있는 브로드웨이에서는 일부 공연이 취소되거나 관객의 입장이 제한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AMC링컨스퀘어 영화관에서는 정전으로 관객들을 모두 대피시키는 소동이 일어났다. 뉴욕시에 전력을 공급하는 콘에디슨의 존 매커보이 대표는 “기계적 결함”이라고 이번 대규모 정전 사태의 원인을 말했지만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2020년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 선거 운동에 착수했던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유세차 아이오와주를 방문했다가 급거 뉴욕으로 귀환했다. 더블라지오 시장은 이번 사고에 대해 테러 또는 범죄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 지사는 뉴욕 지역 WABC 방송에 출연, “변전소 문제는 처음이 아니다”라며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다만 이처럼 큰 불편에도 불구, 별다른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정전 시간 동안 카네기홀 공연이 취소된 ‘밀레니얼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공연팀이 거리에 나와 즉석 연주를 펼치고, 신호등이 꺼진 교차로에서 45분간 자발적으로 교통 정리에 나선 한 시민의 미담도 화제가 됐다.
이번 대규모 정전 사태는 발생한 지 약 4시간 정도가 지난 이날 자정쯤 해소됐다. 쿠오모 지사는 “전력 공급이 완전히 정상화됐다”며 “다행히 정전 사태가 해결됐으나, 정전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철저한 조사와 재발 방지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맨해튼 지역에 다시 불빛이 돌아오고 에어컨도 작동하기 시작하자 거리에선 이를 축하하는 함성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뉴욕에서 인프라 노후 문제가 불거진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19일에도 맨해튼 중심가에서 노후화된 증기 파이프가 폭발하면서 8명이 다쳤다. 사고가 발생한 파이프는 1932년에 설치돼 사고 당시까지 총 86년간 사용된 낡은 설비였다. 폭발과 더불어 파이프에 묻어 있던 1급 발암물질 석면이 누출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7일에는 뉴욕의 관문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한파에 따른 수도관 파열로 항공기 운항이 지연되거나 취소되기도 했다. 1977년 뉴욕 대정전 당시에는 도심 내 대규모 방화와 약탈로 3억1,000만달러(약 3,655억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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