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주의 확산은 경제전쟁 조짐
지정학 안보불안 겹친 한반도의 위기
정신 바짝 차리고 해결책 찾아내야
10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평화나비 등 긴급 대학생 평화행동 회원들이 아베정권의 보복성 수출규제를 규탄하고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에게 사과를 촉구하며 행진을 하고 있다. 홍윤기 인턴기자

전쟁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간 무역분쟁에서다. 최근 국제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은 정글을 연상케 한다. 정글은 약육강식, 생존경쟁의 냉혹함과 치열함이 특징이다. 일부 국제정치 학자들은 흔히 국제사회를 ‘무정부 상태’로 비유한다. 정부가 없는 국가를 떠올리면 된다. 유엔 등 국제기구가 본연의 역할을 못 하는 상황에서는 힘센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괴롭힐 여지가 많아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불평등한 자는 평등을 추구하고 평등한 자는 불평등을 추구한다”고 했다. 평등한 자가 불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다. 미국이 평등을 추구하겠다는 중국에 가한 행동이 관세폭탄 등이다. 이제 무력전쟁이 총성 없는 경제전쟁으로 대체되고 있다.

세계 각국이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강대국 간의 분쟁은 많이 줄어들었다. 특히 핵무기의 등장으로 ‘상호확증파괴(MAD)’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강대국 간 ‘공포의 균형’이 이루어지면서 1945년 이후 강대국 간 냉전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되지 않고 평화로운 기간이 상당히 길었다. 물론 한반도는 예외였다.

자유무역도 전쟁 억지에 한몫을 했다. “자유무역은 경제적 상호 의존과 상호 번영을 최대화함으로써 정치적 조치 또는 상업ㆍ금융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을 통해 가하는 경제적 처벌에 더 취약하게 만듦으로써, 그리고 영토에 대한 정치적 통제와 영토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분리함으로써, 전쟁에 관여할 유인을 줄인다”는 것이다. (‘전쟁과 평화’, 아자 가트)

2차 세계대전은 자유무역이 무너지고 보호무역이 강화하면서 발생했다. 아자 가트에 따르면 1929년 월스트리트 주가 폭락의 여파 속에서 보호주의가 강해지고 국제무역이 붕괴되는 가운데 독일과 일본이 자급자족이 가능한 대규모 제국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재빨리 움직인 결과가 경기 침체였고 동시에 정치적 재앙(2차 대전)이었다. 지금처럼 보호무역이 심화할 경우 전쟁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달러화의 가치를 떨어뜨릴 방법을 찾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환율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것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심각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지정학적 요인이 취약하다. 지정학은 핵무기 확산과 냉전시대에 강대국 간 분쟁이 줄어들면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새삼 이 이론에 관심이 가는 것은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간 대결 구도 때문이다. 중국이 부상해 미국과 동아시아에서 격돌하면서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이 중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충돌지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육지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인 한반도는 대륙 강국을 위한 완충지대지만, 해양 강국 입장에서는 교두보다. 특히 남한과 북한의 경계선인 비무장지대는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의 유일한 대치 지점이다. 이들 세력이 맞붙으면 한반도가 충돌지대로 변한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정치학자 강성학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은 16세기 말 일본이 명나라 정벌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침략한 이후 변한 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 한반도는 사드 배치, 북한 핵무기 문제로 미국과 중국이 갈등하고, 일본까지 재무장 움직임이 있다. 국력 세계 랭킹 1, 2, 3위의 나라들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으르렁거린다.

한반도에 무역전쟁과 지정학적 안보 불안이 겹친 형국이지만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관리가 쉽지 않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안보와 경제, 일본은 역사와 경제를 연계시키면서 우리나라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강력한 견제를 하는 것처럼, 일본의 한국에 대한 공격 행태도 이런 맥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40년 전 미국이 일본의 반도체를 견제하기 위해 반덤핑 혐의 등을 적용해 공격한 것과 유사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경제전쟁의 후유증은 무력전쟁의 후유증보다 결코 적지 않다. 일본은 미국의 환율 공격으로 ‘잃어버린 20년’이라는 혹독한 세월을 보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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