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작가들이 인정하는 산문가, 박연준 시인이 격주 금요일 <한국일보>에 글을 씁니다.
<11>’장자’-오강남 지음
장자의 가르침은 책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일상 속 깨달음을 안겨주는 ‘생활 경전’이다. 도서출판 길 제공

사람들은 대체로 ‘이야기’를 좋아한다. 세상은 이야기로 이루어져있고,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으며, 이야기는 인간을 이루는 일부이자 전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생 이야기를 찾고, 탐한다.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양산하고, 변주하며, 시간을 견디어 살아남아 우리에게 도착한다. ‘장자’는 다양한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야기책이다. 우리가 보는 ‘장자’는 기원후 4세기 북송의 곽상이란 학자가 떠도는 장자의 이야기를 33편으로 편집한 책이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상상력의 규모가 크고, 이야기의 범주가 넓으며, 품은 뜻이 깊다.

‘장자’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맨 앞에 놓인 ‘소요유(逍遙游ㆍ자유롭게 노닐다)’다. 스케일이 블록버스터 급인 이 이야기는 “절대 자유의 경지”(오강남)에 대해 말한다. 북쪽 깊은 바다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살았는데 크기가 몇 천리나 되었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붕(鵬)이라는 새가 되었는데 날아오르면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아 보일 정도로 컸다. 물고기에서 새로 변한 붕은 북쪽에서 남쪽의 깊은 바다로, 변화한 몸을 이끌고 날아간다(화이위조ㆍ化而爲鳥). 고작 덤불숲이나 옮겨 다니는 메추라기와 비둘기가 그의 행동을 비웃는다. “저 새는 저렇게 날아서 어디로 간단 말인가?(35쪽)” 자기 발치만 보는 이들은 결코 비상하는 자의 자기 초월성, 궁극의 변화,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큰 이야기에 빗대어 삶의 이치를 말하기 좋아하는 장자가 허풍쟁이처럼 보였을까. 혜자(惠子)가 핀잔을 주었다. “자네의 말은 이처럼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어서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걸세.” 장자의 답이 근사하다. “자네는 그 큰 나무가 쓸모 없다고 걱정하지 말고,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고을’ 넓은 들판에 심어 놓고 그 주위를 ‘하는 일 없이(無爲)’ 배회하기도 하고, 그 밑에서 한가로이 낮잠이나 자게. 도끼에 찍힐 일도, 달리 해치는 자도 없을 걸세. 쓸모 없다고 괴로워하거나 슬퍼할 것이 없지 않은가?”(53쪽)

개운한 대답이다! 쓸모 없기론 예술만한 게 없고, 모든 예술(혹은 고매한 사상)은 크고 보기 좋은 나무 같아서, 두고 봐야지 베어 쓰려고 하면 ‘딱히’ 쓸 데가 없는 것이다. 장자는 쓸모 없음의 큰 쓸모(無用之大用)를 역설한다. 그의 이야기는 책장에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라, 책장을 뚫고 나온다. 눈 감고 상상해 보라. 책을 벗어나, 붕처럼 활개 치며 하늘을 나는 이야기들을! 실제로 동서양의 많은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장자’를 흠모했다고 하니, 이 이야기들은 멀리 또 높이 날아본 게 분명하다.

장자
오강남 지음
현암사 발행ㆍ434쪽ㆍ3만 5,000원

‘장자’는 일상에서 꺼내 사용하기에도 좋은 ‘생활 경전’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어느 날 남편에게 집안일로 도움을 요청하는데, 이 사람이 차일피일 일을 미룬다. 나중에 ‘한꺼번에 제대로’ 해주겠다는 거다. 이때 나는 장자 얘기를 꺼낸다! 장자 알지? 거기에 붕어 얘기가 나와. 육지에서 곤경에 처한 붕어가 장자에게 물 한 바가지만 부어달라고 사정하지. 장자가 지금은 어렵고 나중에 서강의 물을 막았다가, 한꺼번에 흘려 보내 주겠다고 하지. 물고기 말은 이래. “나는 꼭 함께 있어야 할 것을 잃고 이렇게 오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저 물 한 말이나 한 되 있으면 살 수가 있겠는데, 선생께서 그런 말을 하시니, 차라리 건어물 점에나 가서 나를 찾는 것이 낫겠습니다.”(410쪽) 이 이야기를 상기시켜주자 그는 크게 후회하고, ‘즉시’ 나를 도와주었다는 흐뭇한 이야기! 주의사항이 있다. 장자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할 때, 가르치려 하면 안 된다. 이야기만 들려주고, 깨달음은 듣는 이의 몫으로 남겨둘 것. 깨달음까지 가르치려 들면, 당신은 (반드시) 꼰대가 될 것이다.

고전은 시간을 두고 읽을 때마다,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생각하게 한다. 20대 때는 이 책이 그저 ‘흥미로운 옛날이야기’처럼 보였는데, 지금 보니 심오한 철학서, 시적 영감으로 가득한 우화로 읽힌다. 아무려나, 장자는 재밌다!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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