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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관광은 덤이다

입력
2019.07.12 04:40
수정
2019.08.01 11:0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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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슬로티시 중 한 곳으로 지정된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에 세워진 조형물. 한국관광공사 제공
우리나라 슬로티시 중 한 곳으로 지정된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에 세워진 조형물. 한국관광공사 제공

빠른 속도가 미덕인 시대에 느림을 추구하는 도시가 있다. 그런 도시를 슬로시티라 부른다. 1999년 이탈리아의 소도시에서 시작된 슬로시티 운동은 빠름과 경쟁보다는 자연을 느끼고,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이웃과 함께 느림의 철학을 일상에서 실천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운동이다. 우리나라는 2007년 4개 도시가 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 슬로시티 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슬로시티를 처음 가본 것은 6년 전이다. 슬로시티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다르게 살고 있는지, 자신의 도시를 슬로시티로 지정토록 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궁금했다. 기왕이면 평상시에 잘 볼 수 없는 넓은 청보리밭을 보고 싶어 4월의 청산도를 선택했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청산도행 배를 기다리던 완도항에서부터 무너졌다. 완도항에는 ‘청산도 슬로시티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슬로시티’라는 단어와 ‘축제’라는 단어가 함께 있는 장면은 너무도 어색해 보였다. 그 현수막을 보는 순간 난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 내가 생각한 슬로시티는 ‘삶의 방식’이었지만, 정작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슬로시티는 ‘판매 수단’인 것처럼 느껴졌다. 당시만 해도 ‘슬로시티 축제’라는 것이 존재하리란 생각조차 못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꽤 순진했던 것도 같다.

지난 6월 22일 목포시가 슬로시티로 지정됨에 따라 우리나라는 16개 슬로시티를 갖게 됐다. 완도군, 담양군, 하동군, 예산군, 남양주시, 전주시, 상주시, 청송군, 영월군, 제천시, 태안군, 영양군, 김해시, 서천군, 목포시가 모두 슬로시티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고, 아시아에서는 독보적으로 1위다. 빨리빨리로 유명한 우리나라에 16개의 슬로시티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빠른 속도에 지친 사람들이 많아서였을까? 느리게 살고 싶은 욕구가 분출된 것일까? 하지만 우리나라의 슬로시티는 삶의 태도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며칠 전 목포시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목포가 슬로시티가 됐으니 어떤 점이 기대되느냐는 질문에 “슬로시티라는 좋은 도시 브랜드를 획득했으니 많은 관광객 유치가 기대된다”고 답했다. 역시 슬로시티는 관광객 유치의 수단이었다. 이쯤 되니 왜 우리나라에 16개의 슬로시티가 있는지 이해가 된다.

본질은 사라지고 관광만 바라보는 것은 슬로시티만은 아니다. 전국의 오래된 주거지에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의 사업이 한창이다. 주거지에서의 도시 재생은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거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어야 함이 당연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낡은 건물을 고치고 기반시설을 정비하는 대신 온갖 그림을 그려놓고 관광객이 많이 오면 ‘성공’을, 적게 오면 ‘실패’를 말한다.

옛 탄광도시에서는 문 닫은 탄광을 이용해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힘을 쏟는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생활환경보다 관광객 편의시설이 더 중요하다. 통영에 문 닫은 조선소를 고쳐 쓰려 하는데, 목표는 글로벌 관광지 조성이다. 제주에 공항을 하나 더 만들려는데, 목적은 더 많은 관광객 유치다.

인천 동구청은 인천의 유서 깊은 마을인 배다리마을을 관광지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얼마 전 오래된 집의 벽면에 또 다른 벽을 덧대는 공사를 했다. 실제야 어떻든, 멋진 외관을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속셈이다. 참다 못한 일부 주민은 ‘관광지가 아닌 지속 가능한 마을을 원한다’는 문구를 적어 집 앞에 붙여놓기도 했다.

본질은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에 있다. 그렇게 시민들이 행복하게 살다보면, 그 비결이 궁금해서라도 관광객은 찾아온다. 관광은 덤이다.

최성용 도시생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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