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집과 차량이 주 업무 공간… 돌발 행동에 속수무책 
 ‘미투’ ‘버닝썬 사태’ 불구 성추문 이어져… “공ㆍ사 경계 모호 피해 주의를” 
배우 강지환. TV조선 제공

“여기(연예계) 일이 ‘난 내 일했으니 집에 간다’고 할 수 있는 환경도 분위기도 아니잖아요. 업무 볼 때와 일을 안 할 때 나눠줘야 할 공ㆍ사 공간 구분도 안 돼 있고요.” 15년째 연예기획사에서 일하는 여성 이모씨는 10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같이 말하며 “연예계 근무 환경이 일부 여성 스태프들에겐 위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연예인의 머리를 다듬거나 얼굴 화장을 담당하는 여성 스태프들은 성추행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 스태프는 연예인 곁에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하고 연예인 곁을 쉽게 떠날 수 없다. 담당하는 연예인이 드라마나 영화 촬영, 외부 행사의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빠짐없이 연예인의 스타일을 잡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헤어와 메이크업 담당 스태프는 주 업무 공간이 연예인의 집 또는 연예인의 차 안이다. 연예인의 사적인 공간에서 지척에서 일하다 보니 연예인 소속사 직원 그 누구보다 가깝다. 업무 관련 긴장이 깨지기 쉬운 근무 환경에서 남성 연예인이 돌발 행동을 하게 되면 헤어ㆍ메이크업 담당 여성 스태프들은 속수무책이 되기 일쑤다.

배우 강지환(본명 조태규ㆍ42)이 지난 9일 함께 일하는 여성 스태프 2명을 성폭행ㆍ성추행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준강간 혐의)로 경기 광주시 오포읍 자택에서 긴급체포된 상황은 업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 2명은 강지환의 헤어와 메이크업 등을 담당하는 스태프들이었다.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연예인과 헤어ㆍ메이크업 스태프는 갑과 을의 관계”라며 “스타 배우가 가까이 있는 헤어ㆍ메이크업 스태프에 지켜야 할 윤리에 둔감해 질 수 있으니 내부 점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헤어ㆍ메이크업 담당 스태프 상당수는 연예기획사에서 고용하지만 특정 업무로 맺어진 계약 관계라 공정한 노동권을 보장받기 어렵다. 10여 년 동안 연예인 10여 명이 속한 기획사에서 매니저로 일한 뒤 대기업의 콘텐츠 기획 관련 계열사로 이직한 여성 강모씨는 “다니던 연예기획사에선 여성 직원이 워낙 적기도 했지만, 회사 내 위계 혹은 성별로 인한 성적 희롱에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조처가 전혀 없었다”며 여성 스태프들이 처한 취약한 환경을 꼬집었다.

‘강지환 사건’을 계기로 연예계의 도덕 불감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미투 운동(#MeToo)으로 문화계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고, 올해 ‘버닝썬 사태’로 여러 연예인의 성폭력 및 추행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강해졌는데도 불구하고 비슷한 일이 반복돼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연예계에서 벌어진 미투나 버닝썬 사태를 여전히 ‘남의 일’로 봤기 때문”이라며 “업계 특성상 공ㆍ사적 업무 구분이 모호한 만큼 성범죄 발생에 연예기획사들이 주의를 더욱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강지환의 소속사인 화이브라더스코리아는 이날 입장문을 내 “배우 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못했던 부분에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죄했다. 강지환의 긴급 체포로 그가 출연하는 종합편성채널(종편) TV조선의 드라마 ‘조선 생존기’는 향후 방송이 불투명해졌다. TV조선은 ‘조선 생존기’의 13, 14일 방송을 일단 취소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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