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폭행 입증 못 해 이혼 후 ‘한국체류 불허’… 두번 우는 베트남 아내들
“한국 국적의 열한 살 딸 두고 못 가” 체류연장 신청했지만 불허
부모씨는 지난해 3월 한국인 남편 백씨와 이혼한 뒤 한국 국적의 딸 부모양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결혼이주여성공동체에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주여성공동체 제공

“남편이 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문 밖으로 끌고 가며 나가라고 밀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밥을 먹을 때 머리채를 쥐고 흔들며 나가라고 했습니다.”

10일 베트남 이주여성 부모(40)씨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지속적인 폭언과 폭행을 일삼던 남편이 집에서 나가라 할 때는 도망쳐도 괜찮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가라 할 때는 그럴 수 없다. 한국 국적을 얻은 11살된 딸이 있어서다. 부씨는 ‘한국에 체류할 권리’를 두고 8개월째 법정 투쟁 중이다.

전남 영암군에서 한국인 남편에게 폭행당한 베트남 아내 A(30)씨 동영상이 공개된 뒤 결혼 이주여성의 인권 문제가 부각된 가운데, A씨 사례가 특이할 것이 없다는 얘기가 쏟아지고 있다. ‘결혼 핑계 삼아 한국에 눌러 붙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 때문에 이혼만 했다 하면 앞뒤 사정 볼 것 없이 이주여성들을 내쫓으려 들어서다. 이 때문에 아무리 모진 대접을 받아도 이주여성은 그저 참고 또 참아야 한다.

결혼이민(F-6) 체류자격 종류. 김경진기자

부씨도 그런 처지다. 6년 전인 2013년 5월 남편 백모(61)씨와 결혼하면서 경남 사천시에 들어왔다. 스물 한 살이나 차이 나는 백씨는 부씨에게 수시로 욕설과 폭행을 일삼았다. 팔 다리 같은 곳은 멍이 들어 알아보기 쉬우니, 잘 드러나지 않는 머리 쪽을 집중적으로 때렸다는 게 부씨의 설명이다.

이듬해 부씨는 베트남에 두고 온 딸을 데려와 입양하기도 했다. 둘 사이에 자식이 있다면 그래도 좀 나을까 싶어서였다. 백씨도 동의했지만, 정작 딸이 오자 분노를 쏟아냈다. 자신 뿐 아니라 딸에게도 수시로 “베트남으로 가라” “벙어리냐” 같은 폭언을 퍼부었다. 백씨가 4번의 이혼경력이 있고, 첫 결혼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인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그러다 2016년 7월 부씨는 법원의 이혼조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백씨는 “아내 부씨가 반복적으로 가출한다”는 이유를 내걸었다. 하지만 사실 부씨 입장에서 가출은 폭언과 폭행을 피해 가정폭력보호소에서 숨어 지내던 시간이었다. 이혼 석 달 뒤 백씨는 부씨 딸도 파양했다. 파양이란 부양을 파기한다는 뜻이다. 한국 국적을 지닌 딸을 부양할 사람은, 이제 부씨 혼자였다.

하지만 부씨는 한국에서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처지다. 한국에 들어오는 결혼 이주여성은 장기체류하면서 일도 할 수 있는 ‘결혼이민(F-6)’ 비자를 받는다. ‘한국인 배우자가 사망ㆍ실종했거나, 부씨처럼 이혼을 했더라도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혼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태’라면 비자(F-6-3)를 유지할 수 있다.

이혼 뒤 부씨는 이 자격으로 체류기간 연장을 신청했으나 법무부는 “혼인의 진정성이 결여돼 있고 남편의 귀책사유가 불명확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출입국 당국은 그 대신 3개월간 출국이 유예되는 ‘방문동거(F-1)’ 비자를 준다고 통보했다. 출국 전 한국 생활을 정리할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을 주겠다는 의미다. 석 달이란 시한도 시한이지만, 당장 딸을 먹이고 입히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 비자로는 취업을 할 수 없다. 결국 부씨는 지난해 12월 체류기간 연장 불허를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소송 쟁점은 ‘이혼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다. 법적으로 부씨가 결혼이민(F-6-3) 비자 자격을 유지하려면 이혼이 100% 남편 백씨의 잘못이어야 한다. 하지만 부부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어느 한쪽만의 책임이 일방적으로 100% 인정되는 경우는 드물다. 또 이를 위해선 폭언, 폭행 관련 증거를 모아야 하는데, 이주여성 입장에서 쉽지 않다.

부씨 모녀의 모습. 이주여성공동체 제공

부씨 소송 대리인인 최정규 변호사는 “이번 전남 영암 A씨 사건은 그나마 피해자가 몰래 카메라라도 찍었기에 다행”이라며 “입증이 어려우니 이주여성들 대부분은 부씨처럼 이혼 때 조정을 택하게 되고, 조정에 들어가는 순간 남편 책임 100%는 거의 불가능해져 결국 이주여성만 불이익을 당하는 악순환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부씨의 딸이, 남편 백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아니라 입양한 딸이라는 점도 불리한 요소다. 최 변호사는 “부씨 딸은 엄연히 한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입양아에 대한 차별이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씨는 지금 서울의 한 식당에서 일하며 초등학교 다니는 딸을 돌보고 있다. 딸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기르겠다는 것 외엔 바라는 건 없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출입국 당국은 여전히 ‘100% 남편 책임 입증’을 내걸고 있다. 결혼이주여성 생활공동체인 관계자는 “그저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이주여성을 굳이 고국으로 되돌려 보내 또 다른 편견에 시달리게 하는 건 가혹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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