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검찰 등 수사기관이 의뢰인의 비밀을 잘 아는 법무법인(로펌)을 압수수색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변호사 업계에서는 로펌에 대한 압수수색 요건을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의뢰인과 변호사간 비밀유지 조항 때문에 실체적인 진실 규명을 제한할 수 없다는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대한변호사협회는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공동으로 ‘변호사 비밀유지권 도입 정책토론회’를 열고 학계, 변호사 업계, 법무ㆍ검찰, 법원 등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변호사들이 문제 삼는 것은 현행 변호사법이 변호사의 비밀유지 ‘의무’만 규정하고 있을 뿐 비밀을 지킬 수 있는 ‘권리’까지 보장하고 있지 않은 점이다.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 이뤄진 의사교환 내용, 또는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제공받은 자료 등의 제출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명문 규정이 없다는 게 변호사들의 지적이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 된 건 2016년. 당시 검찰은 롯데그룹 탈세혐의 수사를 이유로 5대 로펌 중 한 곳인 율촌을 압수수색했다. 또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는 업계 1위 김앤장이 각각 사법농단과 가습기 살균제 사건 때문에 압수수색을 당했다. 초대형 로펌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어지자 변호사 업계에선 “검찰의 비밀유지권 침해가 공공연해진 상황에서 앞으로 어떤 의뢰인이 변호사를 믿고 상담을 하겠느냐”는 우려가 커졌다.
이날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한애라 성균관대 교수는 “의뢰인이 불리한 것까지도 숨기지 않고 털어놓아야 적절한 법률상담을 받을 수 있는데, 비밀유지권이 지켜지지 않으면 헌법상 기본권인 ‘변호사 조력을 받을 권리’ 마저 상실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비밀유지권을 실체적 진실 발견보다 우선시하는 미국 등 선진국 사례를 언급하며 “의뢰인과 변호사 모두가 비밀유지권 주체로서 이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광장의 이병화 변호사는 “변호사의 비밀유지 의무는 의뢰인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직역 이기주의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한변협은 장기적으로 변호사법뿐 아니라 형사소송법에도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을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변호사 업계의 이런 요구에 대해 변호사법 관리 주체인 법무부 측은 신중한 입장을 표했다. 토론회에서 윤성훈 법무부 서기관은 “비밀유지권의 범위와 요건, 절차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이런 부분이 미비하면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증거인멸 등 오남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 역시 “입법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보다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