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도쿄 인근 후나바시 거리에서 연설하고 있다. 도쿄 AP= 연합뉴스

“이제 제발 정치가 경제를 좀 놓아주어야 할 때 아니냐.”

지난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페이스북 글에서 일 안 하는 대한민국 국회에 이렇게 일갈했다. 그는 “여ㆍ야ㆍ정 모두 경제위기라는 말을 입에 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위기라고 말을 꺼내면 듣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억장이 무너진다“고도 했다. 본업인 입법은 제쳐두고 싸움박질로 허송하는 국회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백 번 공감할 말이다.

박 회장의 말은 한국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다. 제발 경제를 놓아달라는 건, 지금 세계 경제가 지르는 비명이기도 하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언제부터인가 신용, 수요ㆍ공급, 기상이변 같은 전통의 경기변동 요인을 언급하기 꺼린다. 대신 “경제 예측이 무의미한 시대”라는 게 그들의 탄식이다. 이는 경제의 실상을 반영하는 주가, 환율, 유가 등 가격변수만 봐도 알 수 있다. 대세상승이나 추세적 하락 같은 분석이 사라졌다. 정치 이슈가 터질 때마다 가격 흐름은 수시로 방향을 바꾼다. ‘상저하고’ ‘전강후약’ 등으로 표현되던 전문가들의 경기 전망이 불과 며칠 새 무색해지는 경우도 잦아졌다.

이것도 어떤 의미에선 ‘뉴 노멀’이라고 해야 할까. 글로벌 경제를 정치에 종속시킨 대표 주자는 단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가 중국을 향해 “25% 관세를 물리겠다”고 했을 때, 처음엔 설마 진심일까 싶었다. 하지만 그 협박이 점차 소용돌이를 일으키더니, 이제는 세계 경제의 최대 변수가 됐다. 트럼프가 애초 관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글로벌 경제는 지금과 사뭇 다른 항로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중앙은행을 향한 트럼프의 도발은 역사책에 오를 감이다. 역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이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린 건, 어떤 정치권력도 연준의 판단에 토를 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준의 독립 행보가 결과적으로 경제엔 더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통해서였다.

그런데 연준에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 대통령이 나타났다. 처음엔 버티는 듯하던 연준도 ‘기준금리 조정에 앞서 가지겠다’던 인내심을 어느새 버렸다. 글로벌 금융사 투자 담당자들이 눈을 뜨자마자 트럼프의 트윗부터 쳐다보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트럼프를 따라 나섰다. 올 하반기 한국 경제는 일본의 무역 협박에 시계 제로가 됐다. 처음엔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탓하는 듯하더니, 이젠 한국이 북한 제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식의 억지를 편다. 납득도, 이해도 불가지만 어쩌겠는가. 역시 눈 앞에서 벌어지는 엄연한 현실인 것을.

정치가 경제 위에 군림하게 만든 건 결국 표다. ‘스트롱맨’이라 불리는 정치인들은 선거 승리를 위해 서슴없이 경제를 볼모 삼는다.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해진 세계에서 대중의 불만을 표로 살 수 있으면 그만이다. 멕시코가 국경장벽을 만드는 데 협조하지 않으면, 관세를 올리겠다고 흰소리를 하는 게 자신의 재선에 유리하다고 믿는 정치인이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이다.

‘경제는 경제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상식이 통하던 시절엔, 그렇게 하는 것이 표를 얻는 데 더 유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른 시대가 됐다. 갈등과 불평등이 지금보다 개선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트럼프와 아베는 계속 등장할 것이다. 하기야 우리라고 다를까 싶다. 무섭게 늘어날 노인빈곤 인구의 표심 앞에서 국가채무를 두고, 국민연금을 두고, 각종 세금을 두고 한국의 정치인들은 또 어떻게 경제의 발목을 잡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폭력이 지배하는 뒷골목만 빼면 그래도 이성과 상식이, 각 분야의 논리가 통하는 세상이라 여겼다. 그런데 국가 사이의 대결을 보니, 정치와 경제가 뒤섞이니 영락없는 조폭들의 무대다. 우리는 받아 칠 주먹을 지니고 있는가. 없다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세상에 쏟아져 나올 미래의 트럼프가, 아베가 묻고 있다.

김용식 경제부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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