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역 자사고 8곳이 시교육청의 운영성과 평가의 벽을 넘지 못하면서, 대거 지정 취소 위기에 몰렸다. 5년 전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교육부가 마지막에 자사고 측의 손을 들어줘 기사회생했지만,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문재인 정부는 시 교육청의 평가를 뒤집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9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이번 운영성과 평가에서 탈락한 학교들은 자사고의 지정 목적인 ‘다양한 교육과정’ 대신 ‘입시 위주의 교육과정’을 운영해 많은 감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건호 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은 “건학 이념과 자사고 지정 목적에 맞는 학교 운영을 위해서 중장기 학교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려는 노력,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선택과목 개설과 선행학습 방지를 위한 노력 등에서 상당수 학교의 평가 결과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건학이념과 지정취지를 반영한 특성화 교육프로그램 운영(4점) △선행학습 방지 노력(4점) △다양한 선택과목 편성ㆍ운영 정도(5점) △인성진로교육 등 다양한 교과외 프로그램 편성ㆍ운영의 적절성(3점) 등에서 대거 감점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한 평가’ vs ‘깜깜이 부당평가’
시교육청은 이날 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공정한 평가’였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번 평가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공약인 ‘자사고 폐지’를 위해 기획된 부당평가라는 자사고 측의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평가 매뉴얼에 자사고 측의 요청 사항을 일부 수용한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이번 평가지표에 들어간 ‘학생전출 및 중도이탈비율’(4점)의 경우 가족의 이사, 해외 유학 등의 타당한 이유로 학교를 옮긴 인원은 집계에서 제외했다. 또 ‘교원(수업교사) 1인당 학생 수 비율’(2점)의 경우 정원 외로 채용한 기간제교사, 시간강사, 영어회화전문강사도 포함시켰다. 최대 12점까지 감점이 가능해, 당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였던 ‘감사 등 지적 사례’ 항목도 경미한 동일 사안에 여러 교직원이 관련된 경우 평가 위원 간 협의를 거쳐 1건으로 처리했다고 덧붙였다.
상산고를 평가할 때, 기준점수를 높여(80점) 평가 방식의 공정성 논란을 일으켰던 전북도교육청과 달리 서울의 경우 공정성 논란이 적을 것으로 시교육청은 자신하고 있다. 기준점수(70점)는 교육부 표준 권고안을 수용했고, 사회통합전형 지표에 관해서도 비교적 잡음이 적다. 자립형사립고에서 출발한 자율형사립고인 상산고는 사회통합전형 선발이 의무가 아닌데도 이를 평가 지표에 넣어 반발이 거셌지만, 서울 지역의 자사고는 사회통합전형 선발 비율 20%가 법적 의무다.
반면 자사고 측은 ‘자사고 폐지’라는 목적을 위해 기획된 부당평가라며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자율형사립고공동체연합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교육감에게 자사고 공동체가 추천하는 중립적인 교육 전문가를 단 한 명이라도 평가 위원으로 포함시켜 줄 것과 평가 기준 설정 및 심의 과정, 평가 위원 선정 기준 등 평가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철저히 묵살당했다”고 반발했다. 평가 기준 설정과 평가 과정이 모두 ‘깜깜이’로 진행돼 객관성과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시 교육청은 교육부의 최종 결정 후 평가 위원 명단 공개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 자사고 폐지 정책 탄력받을 듯
교육계 안팎에서는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자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만큼 교육부가 대다수 학교의 지정 취소 신청에 동의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의 경우 이명박 정부 때 자사고가 너무 급속하게 늘어나, 우수한 학생이 집중되면서 고등학교가 서열화되고 교육 시스템 전반이 왜곡됐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번에 탈락한 자사고 8곳 모두 이명박 정부 시절 자사고로 지정된 학교다.
‘취소유예’처럼 다시 한번 기회를 줄 가능성도 높지 않다. 2014년 숭문고와 신일고의 경우 평가 기준점수에 미달됐는데도 교육과정 개선 방안을 담은 계획서를 제출하고 2년 뒤 재평가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취소가 유예된 적이 있지만, 두 학교는 이번에 또다시 탈락했다. 박건호 국장은 “교육부 지침에 의하면 (취소유예가) 어려운 것으로 보이지만 청문 주재자 판단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22~24일 3일간 청문회를 실시한 후 교육부에 자사고 지정 취소 동의 신청서를 제출한다. 교육부는 ‘특수목적고등학교 등 지정위원회’를 열어 심의 후 부동의 여부를 결정짓는다. 교육부는 이날 “관련 법령에 따라 평가의 내용 절차의 위법, 부당성, 평가 적합성 등을 엄중 심의한 후 신속하게 동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상산고 등 전국단위 자사고의 경우 7월 중순쯤, 서울 지역 자사고의 경우 다음달 중으로 자사고 재지정 여부가 최종 결론 날 전망이다.
서울 지역 8곳 자사고들의 지정 취소가 확정되면 교육부가 추진 중인 일반고 중심의 고교체제 개편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5년 전 재지정 평가 때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 이 학교들은 자사고의 지정 목적에 맞게 운영할 의지와 노력이 없었다고 보여진다”며 “교육부도 자사고와 특목고 폐지, 고교평준화에 대한 개혁의 흐름을 거역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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