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아침을 열며] 똑똑한 전문가의 어리석음

입력
2019.07.10 04:40
31면
0 0
데이브 림프 아마존 디바이스 수석부사장은 지난해 9월 시애틀에서 인공지능 스피커 알렉사를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홈 기기 15종을 공개했다. 포토아이
데이브 림프 아마존 디바이스 수석부사장은 지난해 9월 시애틀에서 인공지능 스피커 알렉사를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홈 기기 15종을 공개했다. 포토아이

교수로 일하다 보면 종종 평가나 심사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끔 자리가 불편해질 때가 있습니다. 참석해 보니 제 전문성과 거리가 있는 일이라는 걸 발견할 때 그렇습니다. 그저 동네 아저씨 수준의 이해를 가지고 뭔가 의견을 내야 하는 상황은 난감합니다. 그런데 더 괴로운 경우는 너무 강력한 의견을 가진 동료 평가위원을 만나는 경우입니다. 평가대상에 대해 “절대로 안된다”거나 “완벽하다”거나 하는 아주 센 의견을 내고, 자신의 주장에 요지부동인 분들이 계시면, 게다가 그분들이 자신이 이 분야 최고 전문가라고 주장하면 토론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뭔가 꺼림칙하지만, 강력한 주장에 세게 반박하기는 좀 불편해서 그 주장에 따라가는 현상이 생깁니다. 그러나 최근 어떤 뉴스 하나를 보면서 앞으로 그러지 말자는 생각을 새삼 했습니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스피커, 알렉사 이야기입니다.

알렉사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가장 먼저 제휴를 한 파트너 가운데 하나가 우버였습니다. 인공지능 스피커야말로 차세대 플랫폼이라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버 사용자들 중에 알렉사를 이용해서 차량을 호출하는 사람들은 겨우 하루 수백 건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전체 우버 호출의 0.002%밖에 안되는 수치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인공지능 스피커는 아직 주도적인 플랫폼으로 자리 잡지 못했고, 날씨 확인이나 음악 재생 정도의 용도에 머물러 있습니다. 알렉사의 최근 성과가 속속 밝혀지면서 비관론은 점점 힘을 얻고 있습니다. 모든 사무실에 알렉사를 설치해 업무를 지원하겠다는 아마존의 비전에도 불구하고 작년 알렉사의 기업 부문 매출이 겨우 3억원가량이었다고 하고, 알렉사가 차세대 쇼핑의 접점이 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알렉사 사용자의 2% 정도만 쇼핑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알렉사와 협업에 기대를 걸었던 기업들이 협업프로젝트에서 발을 빼고 있다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스피커가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데 아주 오래 걸릴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어쩌면 영원히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불과 삼사 년 전, 인공지능 스피커가 미래를 곧 바꾼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아마존은 알렉사 부문에 엄청난 투자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현재 알렉사 부문의 근무자는 만 명에 달하고, 링크드인에 열려 있는 최근 구인광고만 천건을 넘습니다. 전문가들의 비관론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20년 전에도 아주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유명 리서치 회사인 포레스터 리서치에서는 “다 타버린 아마존”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이 보고서는 온라인으로 책만 파는 아마존이 강력한 브랜드를 가진 오프라인 경쟁사들, 그리고 멀티채널을 구축한 사업자들에 머지않아 패배할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예측하였습니다. 사실 당시 아마존의 주가는 빠른 상승을 멈추고 하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예측은 사람들에게 더 설득력 높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보고서를 읽고 주식을 판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는 이 예측의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보고서를 쓴 사람은 승진을 거듭하여 현재 이 회사의 대표입니다) 아마존은 보고서에 서술된 도전을 잘 이겨냈습니다.

새로운 산업이나 사업, 그리고 기업에 대한 전문가들의 판단은 참고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특히 과거와 다른 불연속적인 미래는 전문가들의 예측에 의해 정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혁신자들의 몫입니다. 알렉사에 대한 수많은 예측과 분석은 흥미롭지만, 결국 알렉사의 미래는 아마존과 관련기업의 선택과 실행에 달려 있습니다. 혹시나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에 미래를 창조하는 이들이 아니라 똑똑한 전문가들이 너무 많이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