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이 불안감만 키운다”는 지적도
“성범죄자는 ‘성인 여성’도 노리는데, 신상 정보가 담긴 우편물은 왜 미성년자가 있는 집에만 보내주는지 이해가 안 가죠.”
올해 초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에 ‘성범죄 전과자가 이사 왔다’고 알리는 우편물이 배달됐지만,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직장인 이모(29)씨는 이 같은 사실을 한참 후에야 자녀를 키우는 이웃에게 전해 들었다. 현행 법 상 성범죄자 신상 정보는 아동ㆍ청소년이 있는 가정, 학교ㆍ유치원ㆍ어린이집 등에만 전달된다. 때문에 성인 여성인 이씨가 홀로 살고 있는 집에는 우편물이 오지 않은 것이다. 이씨 같은 여성 1인 가구는 올해 기준으로 전국에 290만에 달한다.
이 같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자 성범죄자 정보 고지 대상을 ‘여성 1인 가구’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이 9일 국회에 제출됐다. 그러나 서울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등 잇따르는 여성 1인 가구 대상 범죄를 줄이는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오히려 “대책 없이 불안감만 키울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이 같은 내용의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현행 법은 법원이 성범죄로 형 또는 치료감호를 선고하는 경우에는 성범죄자의 이름과 사진 등 신상정보를 등록하고, 등록된 정보를 아동ㆍ청소년이 있는 가구, 어린이집ㆍ유치원ㆍ학교, 지역아동센터, 청소년수련시설의 장 등에게 고지하도록 하는데, 여기에 ‘여성 1인 단독가구’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김 의원은 “여성 1인 가구가 날로 늘고 있고, 신림동 사건 등 이들을 상대로 하는 성범죄 피해 또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성범죄자 등록정보를 여성 1인 단독가구에게도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기준 여성 1인 가구는 291만4,000가구로, 전체 일반가구(1,997만1,000가구)의 14.6%를 차지한다.
다만 이 같은 조치가 실질적인 안전 대책도 없이 불안감만 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아동ㆍ청소년 보호기관 71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전체의 절반이 넘는 53.3%가 성범죄자 신상 정보 우편에 범죄자의 이름과 주소만 있을 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정부에서 철저하게 관찰, 단속하기보다는 성범죄 관련 보호 책임을 여성들에게 떠넘기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인근에 사는 성범죄자 정보가 필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신상 정보 고지제는 (성범죄) 예방 효과가 없다”며 “누구인지 안다고 해서 마땅히 대처할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에게 ‘조심하라’라는 목소리를 강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송 사무처장은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불안감과 ‘내가 더 조심해야 하나’는 생각을 심어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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