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좌파 포퓰리즘의 시대가 저물고 중도우파 정권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2015년 정권을 잡은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은 10년 가까이 이어진 구제금융 사태를 끝내고도 감세와 투자를 내세운 친시장주의 정당에 씁쓸한 패배를 맞았다. 시리자가 집권 후 공약을 뒤집고 긴축 정책을 실시한 데다, 경제 회복 수준도 기대에 못 미치면서 민심이 이탈했다는 분석이다.
7일(현지시간) 치러진 그리스 조기 총선에서 중도우파 성향의 신민주당(이하 신민당)이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시리자를 밀어내고 4년 6개월 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신민당은 전날 총선에서 39.8%를 득표, 31.5%에 그친 시리자를 누르고 최다 정당이 됐다. 이에 따라 신민당은 전체 300석 의석 가운데 158석을 확보하게 되며 단독으로 내각 구성도 할 수 있게 됐다.
미초타키스 대표는 총선 다음날인 8일 취임식을 갖고 곧바로 총리로 공식 취임했으며, 이날 중 새 내각 구성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들은 이번 총선 결과가 최근 그리스 경제 상황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시리자는 2010년 시작된 구제금융 체제를 지난해 졸업시키고, 최근 국가 경제를 성장세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경제 회복 속도는 국민의 기대 수준에 비해 더뎠고, 결정적으로 치프라스 총리가 자신의 공약을 번복하면서 지지층은 빠르게 이탈했다.
그리스 채무 위기가 고조되던 2015년 1월 총선에서 ‘긴축 거부’를 약속해 당선됐던 치프라스 총리는 이후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벼랑 끝 전술을 폈지만, 결국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사회 요구에 무릎을 꿇는다. 그해 7월 국민투표에서 ‘구제금융안 거부’ 입장이 이겼음에도 결국 3차 구제 금융을 받아들였고, 이후 전임 신민당과 다름없는 긴축 정책과 증세, 공공서비스 축소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물론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국 BBC 방송 등 외신은 치프라스 총리 재임 기간 그리스 경제가 상당 부분 정상궤도로 올라왔다면서 구제금융 체제 종식뿐 아니라 한때 28%에 달했던 실업률을 19% 수준으로까지 내렸고, 또 2%대의 완만한 성장세도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긴축 거부’ 입장 선회와 더불어 최근 이웃 나라 북마케도니아와의 국호 분쟁 합의에서 ‘마케도니아’라는 역사적 이름을 양보하면서 치프라스 총리는 이중으로 ‘배신자’ 낙인에 찍히게 됐다.
이에 그리스 국민은 하버드 출신 컨설턴트이자, 90년대 콘스탄티노스 전 총리의 아들인 미초타키스 신민당 대표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는 외국인 투자 확대와 세금 인하, 일자리 창출 등 자유주의적 친시장 정책을 공약해 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 높이고 있다. 아리스티데스 하시스 아테네대 교수는 “그리스인들은 세금 감면을 기대하고 있고, 과거보다 외국인 투자를 호의적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미초타키스 신임 총리는 그리스가 국제채권단 구제금융 체제에 놓였던 2013~2015년에도 개혁재정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공공부문 일자리를 대폭 감축한 전력 등이 있다.
일각에서는 시리자로 대표됐던 그리스의 포퓰리즘 실험이 막을 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테네경제경영대의 게오르그 파굴라토스 교수는 미 CNN 방송에 "그리스인들은 이미 경제적 포퓰리즘을 직접 경험했고 이제 실용주의로 선회하려는 것"이라며 "2015년 총선은 절망 가운데 한 가닥의 희망이었지만 이상은 무너졌고, 이제 국민은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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