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실장, 최태원ㆍ정의선ㆍ구광모 등 총수와 靑서 비공개 개별 면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7일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비공개 회동해 일본의 대 한국 수출규제와 관련한 대응방향 등을 논의했다. 이번 만남은 김 실장이 총수들과 직접 접촉해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통해 일본의 조치를 ‘보복적 성격’으로 규정한 이후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 상황관리를 주도하는 모습이다. 청와대는 ‘외교적 해법’을 원칙으로 한다는 방침이지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공격적 대응책 마련 또한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 실장이 주요 기업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했다”고 밝혔다. 회동은 비공개였으나, 추측성 보도가 잇따르자 문자메시지를 통해 관련 사실을 확인해 준 것이다. 고 대변인은 다만 “대외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향후 적극적으로 긴말한 소통을 이어가기로 했다”고만 전했을 뿐 참석자 면면과 의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청와대와 정치권 등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만남 대상은 5대 그룹 총수였고,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은 일본 현지 출장으로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남 방식은 오찬 간담회 등이 아니라 개별 면담 형식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차원의 공식행사 성격을 지우는 한편, 민감할 수 있는 개별 기업의 속사정을 터놓고 애기하기 쉬운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장소도 보안을 고려해 청와대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청와대가 극도로 말을 아끼는 데는 이번 사안이 상대가 있는 게임인 만큼 우리 측의 전략ㆍ전술 공개를 최소화해 협상의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도도 없지 않아 보인다. 김 실장은 4일 방송 인터뷰에서 “(갈등의) 상승작용을 원하는 아베 총리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저희가 준비한 것을 자세하게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은 상대에게 패를 다 보여주는 것이어서 일본을 상대로 한 협상력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재계 차원에서 자체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 또한 우선은 신중 대응 모드를 유지하는 이유로 꼽힌다.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로 일본 기업들도 직격탄을 맞게 된 만큼, 민간 외교 차원에서 우리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우리 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그리 길게 가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여권에서는 청와대가 밝힌 외교적 대응책 마련이 힘들다는 확실한 판단이 설 경우 실력행사를 해서라도 사태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냐는 공감대가 적지 않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가 삼성ㆍSK 등 반도체 기업뿐만 아니라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직접적 피해가 덜한 현대차ㆍLGㆍ롯데 등과 공동대응 전선 구축에 나선 것은 다음 단계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30대 그룹 총수들과 간담회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만큼 일본의 대 한국 수출규제 사태의 분기점이 멀지 않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문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수석ㆍ보좌관 회의도 8일 예정돼 있다. 문 대통령 발언 수위에 따라 한일 갈등이 전면전으로 비화하는 사태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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