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이기적이고 차가운 시어머니 때문에 남편까지 싫어져요.” 사진은 게티이미지뱅크.

저는 한 살과 네 살 아이 둘을 키우는 주부예요. 여섯 살 연상인 남편과 만난 지 두 달 만에 아이가 생겨 6개월 만에 결혼했어요. 급하게 결혼하다 보니 집을 마련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시댁에서 2년만 살다가 분가하기로 약속하고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시댁에 들어와서 보니 시부모님 사이가 너무 안 좋았어요. 과거 시어머니의 외도로 두 분의 사이가 틀어졌고, 그 이후로 시아버지는 매일 술을 드시고 우울해하셨다고 합니다. 두 분이 식사도 같이 하지 않아서 시아버지 식사를 제가 챙겼어요. 함께 사는데도 시어머니는 시아버지나 저와는 말도 섞지 않았어요. 물어봐도 대꾸도 안 하고 눈도 맞추지 않았어요. 손주들도 차갑게 대했습니다. 기저귀 한 번 갈아 준 적 없었지요. 그러면서도 다른 친척들에게는 손주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그럴 때마다 얄밉고 가식적인 모습에 화가 납니다.

분가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지만 시아버지가 최근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분가는 없던 일이 됐습니다. 시어머니가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은 제게 시어머니와 계속 함께 살 생각이라고 통보했어요. 남편에게 ‘도저히 시어머니와는 같이 못 살겠다’고 했지만 남편은 저에게 ‘철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어머니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오히려 화를 냅니다.

분가 얘기만 꺼내면 남편이 뭐라고 하니 저는 시어머니에 대해 뭐라 말도 못하고 혼자 참고만 있습니다. 분가하기로 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저는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어요. 시어머니는 시아버지가 세상 떠난 후 남긴 재산도 모두 본인이 차지했어요. 남겨진 화물차와 집, 사망보험금, 심지어 장례 부조금까지도요. 본인의 외도로 두 분 사이가 수십 년간 말도 하지 않을 정도로 안 좋았는데, 시아버지 재산까지 다 챙기는 모습에 남아 있던 정마저 떨어졌습니다. 시어머니가 잔소리를 하셔도 속으로 ‘본인은 바람까지 폈으면서 남한테는 이래라저래라 말도 잘하시네’라는 생각도 들고요.

시댁을 피해 친정으로 가고 싶어도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알코올중독자였던 아버지는 술을 드실 때마다 사람을 괴롭히고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저는 그런 아버지가 항상 두려웠어요. 어머니는 한없이 따뜻하고 희생적인 분이었어요. 엄마에게 효도하고 싶은데 친정에 가면 제 결혼생활과 시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게 되고 육아까지 떠맡겨 엄마를 더 괴롭히는 것 같아서 항상 죄송합니다.

매일 시어머니 얼굴만 봐도 화가 나고, 이제는 남편도 싫어지고 이혼하고 싶습니다. 제 능력도 안 되고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삽니다. 같은 집에 살지만 시어머니와는 말도 하지 않고,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피할 정도예요. 그렇게 사는 게 아이들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을 알지만 시어머니만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민정(가명ㆍ32ㆍ주부)

민정씨, 일반적으로 시부모와 함께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시부모와 함께 사는 많은 며느리들도 저마다 힘든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민정씨가 시어머니를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처럼 유독 시어머니를 못 견디게 힘들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연으로 볼 때 시어머니는 자식에게 헌신적이지도 않고, 손주를 예뻐할 줄도 모르고, 정(情)도 없고, 아주 자기밖에 모르는 분입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동인 외도를 했지만 반성의 기미도 없어 보여요. 시아버지 사망 직후 재산을 움켜쥐고 자식이나 손주에게 나눠 줄 생각도 없어 보여요. 그런 면을 갖고 있는 시어머니 때문에 민정씨는 시아버지 식사도 챙겨야 했고, 육아 도움도 받지 못했고, 분가도 쉽게 하지 못했어요.

시어머니의 행동들은 민정씨가 그를 싫어하는 표면적인 이유일 거예요. 그런데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민정씨가 갖고 있는 내면의 문제도 영향을 줬을 거예요. 알코올중독자였던 아버지는 무능하고 난폭했어요. 어머니는 따뜻했지만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어루만져 주지는 못했을 거예요.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어머니에게 힘들다고 말하기도 어려웠을 거예요.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사랑과 보호, 존중을 민정씨가 충분히 누리지 못했을 수 있어요.

그런 당신에게 시부모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시아버지는 (친정아버지보다) 최소한의 경제적인 능력도 있었고, 술을 마셔도 폭력을 휘두르진 않았어요. 오히려 바람을 피우고도 뻔뻔한 아내와 함께 사는 불쌍하고 무기력한 피해자처럼 보였을 거예요. 당신의 어머니처럼요. 반대로 시어머니는 당신의 아버지처럼 가해자로 느껴졌을 거예요. 아버지가 폭력적인 ‘능동 공격형’이라면 시어머니는 눈길 한 번 안 주고, 무시하는 ‘수동 공격형’이었을 거예요. 아버지가 무능하고 난폭했다면 시어머니는 단순하지 않고 영리하고 이기적이고 가증스러운 가해자로 느껴졌을 거예요. 외도해서 배우자와 자식에게 할 도리를 하지 않고도 뻔뻔하게 잘 살면서, 재산까지 쥐락펴락하는 사람으로 당신에게 느껴졌을 거예요. 여전히 집을 핑계로 아들을 조종해서 당신을 힘들게 한다고 느낄 거예요.

당신에게 시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더 감당하기 버거운 존재일 거예요.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가까이 하지 않으면 됐지만 시어머니는 눈엣가시처럼 행동 하나, 말 한 마디로 당신을 힘들게 하니까요. 아버지를 보면 ‘왜 인생을 저렇게 살지’라는 한심한 생각이 들지만, 시어머니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고 가증스럽지’라는 분노가 치밀어요. 그런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차라리 당신의 험담을 했다면 가증스럽진 않을 텐데, 남편에게 전혀 내색하지 않는 모습도 당신을 혼란스럽고 불안정하게 만들었을 거예요. 그런 시어머니를 탓하면 결국은 남편에게 민정씨가 나쁜 사람이 되고 말지요.

게티이미지뱅크.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뤄 살고 싶었을 당신에게 시어머니는 ‘어떻게 부모가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들게 할 거예요. 남편과 자식에게 차갑게 대하고, 심지어 손주를 사랑해 줄 줄도 모르고 그럴 거면 낳지를 말지 하는 생각이 당신을 괴롭힐 거예요. 마음 한편으로는 ‘왜 나는 이런 대접밖에 못 받나’라는 우울감과 슬픔, 화와 분노가 밀려오지요.

민정씨, 시어머니가 당신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 사람으로 느껴지는지 정신과 전문의로서 너무나 잘 압니다. 당신이 시어머니를 끔찍하게 여기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고요. 하지만 아주 냉정하게 말하면, 시어머니에게 크게 분노하고, 우울해하고, 힘이 드는 것은 당신의 내면에 해결되지 못한 갈등이 있기 때문이에요. 섭섭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사실을 알아차려야 당신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질 수 있어요. 앞으로 아이들을 키울 때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고요.

자식을 따뜻하게 대하지 않고, 같이 살면서도 손주를 봐주지도 않고, 재산을 나눠 주지 않고, 이기적인 시어머니는 비단 민정씨의 시어머니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많습니다. 당신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당신의 방식과 다르다고 시어머니를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어요. 외도 문제 역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문제예요. 외도한 게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외도로 자식을 내팽개친 것도 아니고, 학대한 게 아니라면 당신이 시어머니의 외도로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시어머니의 행동이 당연하거나, 옳다거나, 정당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시어머니 편을 들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식에게 해 주고 베풀어 줘야 하는 것을 시어머니가 해 주지 않는다고 그를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시어머니가 민정씨를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요. 그런 시어머니를 싫어할 수는 있지만 피가 거꾸로 솟는 것같이 고통스러운 것은 민정씨와 시어머니의 관계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을 거예요.

게티이미지뱅크

민정씨의 잘못이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당신 스스로 당신의 고통의 원인을 알아차려야 고통을 완화시키고 일상 생활에서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어요. 당신에게 시어머니가 나쁘게 느껴진다는 것은 당신에게 취약한 면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지요. 시어머니의 행동이 당신의 해결되지 않은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았을 아픔을 계속 건드리는 거지요.

민정씨 말대로 시어머니와는 멀리 지내고, 분가하는 게 필요합니다. 남편이 쉽게 분가하지 못하는 이유부터 생각해 봐야 해요. 정확한 이유를 먼저 물어보세요. 돈 때문인지, 엄마를 걱정해서인지를요. 남편의 이유를 잘 들어보고, 민정씨의 입장을 잘 전달해 보세요. 남편에게 ‘처음부터 분가하기로 했잖아. 왜 약속을 안 지켜’라고 따지면 남편은 ‘상황이 달라졌잖아’라고 맞받아쳐 결국 싸우고 말 거예요. 그보다 ‘시어머니와 같이 있는 게 내가 너무 힘들다. 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으려면 서로 안전한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못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시어머니가 나와 아이들에게 차갑게 대해서 서운하다. 우리는 부부고, 성인이니까 우리 삶을 우리가 일궈 갈 수 있도록 단칸방이라도 분가하는 게 좋겠다’고 해 보세요. 그리고 남편이 어머니에게 “어머니도 편안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가까이 살면서 자주 살필 테니, 우리의 분가를 허락해 달라. 우리 부부가 성인으로서 우리의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잘 말하는 게 중요합니다. 민정씨에게 남편은 사랑하는 대상이고 중요한 사람이므로 결혼 전에 겪었던 민정씨의 아픔과 고통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에서 느끼는 어려움도 솔직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에게는 이러한 인생의 대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민정씨가 가족과 함께 편안한 삶을 향해 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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